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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Mar 13. 2024

'-해야 되는데' 병

불안을 줄이는 방법

나는 자주 ‘해야 되는데’ 병에 걸린다. ‘설거지해야 되는데, 빨래해야 되는데, 개야 되는데, 청소기 돌려야 되는데, 분리수거해야 되는데, 운동 가야 되는데’ 세상에, 할 것들은 이렇게나 많은데 침대에서 몸만 꼬다 밤이 와버린다. 아무도 대신해 줄 사람은 없고 집은 엉망진창인 채로 며칠이 지난 걸 알지만 도무지 싱크대로 가서 고무장갑을 낄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 거야!’ 자책하면서 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를 넘긴다.

‘불안한 걸 즐기나? 마조히스트야?’ 싶겠지만 자꾸만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은 뇌가 다르게 생겼단다. 남들보다 편도체가 커서 부정적인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큰 불안을 느끼게 되어할 일을 미룬다는데, 글쎄 변명처럼 들리려나?


필시 뇌 속에 대형 아몬드를(편도체는 아몬드 모양을 닮았다) 가졌을 것이라 예측되는 나는 실제로도 불안함을 크게 느낀다. 대비되지 않은 미래가 불안해서 자꾸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특히 많은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요즘 더욱 조급한 마음이 생긴다. 결혼을 한 친구들은 노인이 되면 남편이나 장성한 자식들이 남겠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그들이 육아에 힘쓰는 동안 다른 어떤 것이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결혼한 친구들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야만 해!’ 불안이 부르짖는 외침에 쫓겨 유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거나 억지로 몸뚱이를 일으켜 헬스장에 간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틈틈이 사람도 만난다. 이 세상에 핏줄이나 짝꿍을 남기지 않는 대신 지식을 쌓던가 튼튼한 몸뚱이라도 가지기 위해 자아 성취에 열을 올린다. 모던하면서도 화려하고, 도시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느낌을 아는가? 그렇다면 나를 이해할 것이다. 아주 게으르면서도 성실한 모습을 두루 갖춘 사람. 그것이 바로 나다.


물론 나도 머리로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얼마간 모른척하며 놓아두어도 괜찮다는 것도, 아무도 나에게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도대체 뭐 했니?’라며 다그치지 않을 것을 잘 안다. 유학을 가거나 책을 출간한다고 해서 더 나은 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버둥대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탄생으로 인해 엄마가 불행해졌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이 세상에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흘러간 것일까? 아니, 지나친 비약이다. 완전 자기 연민에 절었구먼.


나를 쪼그라들게 만드는 불안에서 기어 나오기 위해 최근 몇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다. 그중 효과를 본 한 가지는 하루에 두 번 할 일 목록을 적는 것이다.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주간 다이어리를 펼친다.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적고 우선순위를 매긴다. 더불어 헤드폰 닦기, 영양제 먹기와 같은 사소한 일들도 함께 적는다. 오전에 작성한 목록은 퇴근하기 전까지 끝낼 수 있는 범위로 작성하고 거의 대부분 완수하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노트에 한번 더 할 일을 적는다. 밥 하기, 먹기, 치우기, 책 30페이지 읽기, 글 한 단락 쓰기, 운동하기. 모두 할 시간이 되지 않아도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저녁에는 오전과 다르게 목록 중 딱 3가지만 하려고 한다. 개수를 채우면 억지로 나머지 것들을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머릿속에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떠 다니지 않도록 눈앞에 목록을 만들어 놓고 지우는 일에 집중한다. 모두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실패의 부분을 미리 마련해 놓으면 압박이 훨씬 줄어든다.


다른 사람만큼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야무지게 저녁 식사를 잘 챙겨 먹은 스스로를 칭찬한다. 미미한 성취에도 크게 뿌듯해하며 침대로 돌진. 누워 뒹구는 것은 똑같아도 뭔가 해낸 다람쥐 가 된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산뜻하다. 부정적인 감정에 자신을 방치하는 것은 자기 학대이다. 불안에 익숙해지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 하루에 3가지만 해보자. ‘밥 먹기, 양치하기, 영양제 먹기’ 뭔가 해낸 나, 오늘도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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