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대하여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살다 보면 취향에 고립되기 쉽다. 늘 먹던 것만 먹고 하던 것만 하게 되는 하루의 루틴은 고민의 부재를 안겨준다. 어떤 사람들은 취향이 있는 사람이 멋있다고 말을 한다. 글쎄, 제법 진한 취향을 가진 나는 오래된 취향에 고립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달지 않은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을 좋아하고 스테이크는 미디엄레어로 굽는 것을 좋아한다. 까눌레와 평양냉면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지 이제까지 내가 먹었던 까눌레만 맛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의 호부를 알고 별다른 시도 없이 행하면 실패 없는 지름길로 갈 수 있겠지만 익숙한 길만 가다 보면 다른 풍경은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취향과 다른 시도를 해본다.
해운대의 어느 카페에서 잘 구워진 모카 까눌레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까눌레가 겉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속은 덜 익은 밀가루 반죽처럼 축축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다. 또 누군가가 까눌레를 주문하는 모습을 보면 ‘그 맛없는 건 시키지 말지!’라고 안타까워했겠지. '저건 내 취향이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며 행동하지 않았던 무수한 시도 속에서 놓쳐버린 즐거움이 얼마나 많을까? 취향이란 간편한 선입견에 불과하다. 여러 번 도전한 끝에 얻은 선호의 결과이기도 할 테지만, 실패할지라도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취향을 찾는 것보다 취향을 넓혀가는 것이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 것이다.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것은 늘 위험 부담이 있다. 내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면 기꺼이 도전해본다. 기껏 해봐야 잃는 건 한 끼의 맛있는 식사와 약간의 시간 정도이다. 그리고 원래 위험한 일이 재미가 있는 법이고.
다른 사람의 취향에 발을 담가보는 것도 좋은 시도이다. 어떤 사람이 좋아지면 그 사람의 취향이 궁금해지고 닮고 싶어지기도 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기타를 잘 쳐서 통기타 소리가 들리는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사람이 maroon5의 노래를 웃기게 불러서 이름도 몰랐던 외국가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의 세계에 빠져보는 흥미로운 경험이다. 나와 꼭 닮은 사람과의 대화는 취향을 깊게 만들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취향을 넓게 만든다. 둘 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취향을 확장하려 노력해 봐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세상에 어떤 다양한 것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기 세상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이다. ‘나는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넓고 깊은 우물 안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 나가고 혼자서 여행을 가보자.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세계가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잘 가꾸어 온 세계에도 그들을 초대하고 싶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지만 외톨이로 살아갈 수는 없다. 서로의 세계에 기꺼이 왕래하며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