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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Feb 21. 2024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지만

좋아하던 술집이 없어졌다. 대학가의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위치해 있고 나와 동갑인 훈훈한 사장님이 혼자서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던 작은 맥줏집이었다.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눈치 주지 않았고 밤거리가 보이는 큰 창 아래로 바가 있어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분위기를 즐기기도 좋았다. 갈 때마다 조용해서 좋았는데 오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문을 닫아버렸다. 사장님은 다른 대학가에서 시끌벅적한 술집을 다시 개업했다. 그가 잘 되어 기뻤지만 늦은 밤 하릴없는 영혼을 달래주던 아지트가 없어져서 못내 서운했다.



혼자서 술을 먹으면 사연이 있는 여자처럼 보이는지 자꾸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몇 번 데이트를 했던 남자에게 꽃다발을 받고 어떻게 거절을 할지 고민을 하며 술집에 혼자 앉아 있던 날, 옆 자리에서 술을 먹던 두 명의 남자는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더니 끝내는 내가 몇 살인지, 무슨 사연으로 꽃다발을 옆에 두고 혼자 술을 마시는지 물어보았다. 질문에 대답을 하자 “거봐 대학생은 아니랬잖아~”라며 추측했던 말들을 내 앞에서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저들은 날 두고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까?

친구들은 남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하며 자신은 혼자 술을 마실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혼자 술 마시는 데에 남다른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냥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이 술을 마실 뿐이다. 다른 사람이 뭘 하든 도무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 나로서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들이 재미있다. 나는 나를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신기해하며 같이 쳐다본다. 혼자가 자연스러운 세상에 너희는 왜 둘이 앉아 있냐는 눈빛으로 그들의 시선을 돌려준다.


좋아하는 술집에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어 아지트로 삼을만한 술집을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적고 조용해야 하며(그러나 망할 정도로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된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팝송이나 심지어 가사가 없는 재즈가 나오는 술집을 좋아한다.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흔쾌히 ‘그러시라’하는 곳이 편하다. 공용화장실이 아니면 더욱 좋겠다. 아니, 작은 술집에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은 사치일 수도 있으니까 그저 깨끗하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허세라고 해도 좋으나 술을 먹으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의 밝기를 가진 조명이 있어야 하며 조금 낯을 가리는 사장님과 천천히 친해져 쭈뼛거리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면 더욱 좋겠다.


마음에 드는 술집을 발견한다고 해서 그곳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술집은 가끔, 혼자서 술을 먹지만 혼자서 술을 먹고 싶지 않을 때 간다.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로 귀를 채우고 적당한 취기와 함께 사람의 온기를 마음에 담고 싶을 때 밖을 나선다.  비교적 외로움을 타지 않고 대부분의 상태에는 혼자서도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한 그릇의 따뜻한 요리를 만들고 조용한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신다. 나는 요리를 잘하고 양조장에서 만든 술은 참 맛있다.


남녀가 만나는 자리에서 주로 묻는 단골 질문이 있다. ”술, 좋아하세요?” 나는 많은 여자들이 “술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술자리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다. 시끄러워 정신이 없고 취해서 제 몸하나 못 가누는 사람이 꼭 하나씩 끼어있는 술자리가 뭐가 좋다는 말인지 나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술을 좋아한다 말하면 술에 환장한 인간처럼 보일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친해지면 나의 반주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니 솔직하게 대답을 한다.

“네, 좋아해요. 특히 반주를요. 시끌벅적한 술자리는 별로고요, 혼술 하는 거 좋아해요.”


‘소주가 달어.’라는 말에 공감하는 류는 아니지만 여행을 가면 지역별 막걸리를 맛보기 좋아하고 편의점에서 새로 보는 세계 맥주를 사거나 마트의 와인 코너를 서성이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음식을 탐닉하는 것처럼 맛보지 못한 술의 세계가 궁금하다. 어떤 종류의 술을 좋아한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골뱅이무침에는 막걸리, 스테이크에는 레드 와인, 햄버거에는 맥주가 짝꿍이다. 오늘은 스트레스가 가득인 날이니까 아주 매운 닭발에 소맥을 먹어야지.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고 거기에는 꼭 들어맞는 술들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에는 따끈한 국물요리에 사케나 청하를 먹고 싶고 운동을 하고 난 여름밤에는 살얼음 낀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넘기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 '너 술 좀 마실 줄 아는 녀석이구나' 하는 기특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지만 그다지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주당보다는 애주가라는 말이 좀 더 가깝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고 알코올중독자라 말하지만 아직 손을 떨 정도는 아니니 조금만 더 술을 사랑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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