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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Feb 14. 2024

방구석 주방장

독립을 앞두고 ‘쟤가 밥은 어떻게 해 먹을 것인가?’는 엄마의 최대 걱정이었다.

“라면 먹으면 되지.” 며칠 굶어도 죽지 않는다는 무신경한 딸의 태도에 마치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사람의 표정으로 퇴근 후 본가에 들러 저녁을 먹고 가라며 당부를 했다.

하지만 내 주방이 생기자 그녀의 우려가 무색하게 자주 밥을 해 먹게 되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뚝딱 잘했다. 배운 적도 없이 잘해서 어이가 없었다. 유튜브나 인터넷의 레시피를 찾아 곧 잘 따라 했고 처음 해본 음식도 그럴듯한 맛을 냈다. 나는 가스레인지의 3구를 동시에 쓰는 사람이었고 ‘요만큼’이나 ‘적당히‘의 양을 감으로 아는 방구석 주방장이었다.


무수한 미완의 상태에 얽혀 있는 인생을 견디다 보면 머리가 복잡한데, 요리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완결을 낼 수 있다는 점이 가볍고 간단해서 좋다. 끝내지 못한 업무의 조각이 집까지 따라와 똬리를 틀고 인생에는 뭐 하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순간이 없는 것 같을 때, 오목한 그릇에 따뜻한 음식을 담고 깨를 톡톡 뿌려 식탁에 올리면 가성비 좋은 성취감이 느껴진다. 식탁에 앉아 숟가락에 담뿍 뜬 덮밥을 먹을 때마다 ‘천재 아니야?’ 하다 보면 스스로를 뭔가 할 줄 아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더욱이 음식은 완성되는 즉시 해체의 순간을 맞기 때문에 반성할 거리를 곱씹을 필요도 없다. 싱거우면 소금을 치면 되고 짜면 물을 붓고 씹어 삼키면 그뿐. 내가 쓴 글을 두고 볼 때처럼 수정할 부분을 구석구석 찾아내지 않아도 되고 시간이 지나도 늘지 않는 실력을 탓하지 않아도 되니 맛이 있어 행복하고 소멸되어 더욱 기쁘다. 또 맛이 없다고 한들 어차피 내 입으로 들어갈 테니 망신살이 뻗칠 염려도 없다.


음식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건 사진뿐이다. 그러니까 잘 찍은 사진에 노란색 필터를 덧씌우고 ‘내가 했지만 #JMT’ 따위의 해쉬태그만 달면 누구나 쉽게 요리 천재인 척할 수 있다. 실로 자랑하기에 알맞은 취미이다. SNS의 ‘(좋아요)’ 숫자 따위에 초연한 어른인 척하고 싶지만 나는 남의 칭찬에 기분이 급상승하는 소인배이다. 어렸을 때는 상장을 받으면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어 발을 동동거렸고 어른이 된 지금도 내가 가진 주식이 오르면 입부터 나불댄다. 그러니 요리하기는 이런 나의 자랑 욕구를 채우는데 제격이다. 팟타이 소스를 쏟아부은 해물 볶음밥이나 토마토소스에 치즈를 올려 구워낸 파스타는 군침 도는 사진이 된다. 물론 대기업의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양념이니 만큼 맛도 보장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밥을 해 먹는 행위가 사치일 수도 있다. 양질의 식사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급한 일은 아니니까. 매일이 바쁜 우리는 급한 일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독촉하는 거래처에 메일 보내기나 마감일 전까지 원고 제출하기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빌어먹을 일에 치여 너무 성실하게 산다.

1인 가정에게 ‘밥 해 먹기’는 그리 효율이 좋지 않다. 소량으로 파는 식재료가 더욱 비싸고 일 인분의 요리에도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며 다음 식사를 준비할 동안 사용 되고 남은 식재료가 냉장고에서 썩어 가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식사를 준비할 시간과 체력이 넉넉하지 않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나조차도 많아 봤자 하루에 한 끼 정도만 집에서 먹는다. 아예 집에서 먹지 않는 날도 있다. 어쩌면 바삭한 치킨 한 마리를 배달시키는 것이 수고로움과 돈을 적게 들이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배달 어플을 켜는 대신 무료배송 금액에 맞춰 신선 식품을 구매하고 대파를 사다가 어슷 썰고 채를 썰어 종류별로 냉동실에 얼린다. 새벽에 배송된 택배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아, 맞다!’하고선 허겁지겁 냉장고에 때려 넣고 출근하긴 해도 배달 음식보다는 내가 만든 집 밥이 더 좋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지만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스스로에게 집중한다. 다른 사람의 선호는 배려하지 않고 오직 나의 취향만 고려해서 좋아하는 재료를 늘이거나 싫어하는 재료를 빼버린다. 맛있는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우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그런 시간이 지친 하루를 보낸 나에게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위로가 된다.


타지에서 생일을 맞은 나에게 엄마는 생일 축화 전화를 하며 미역국은 챙겨 먹었는지 물었다.

“일하느라 바쁜데 그런 거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 대답하자 엄마는 ‘내가 나를 대접해야 남들도 나를 대접해 준다.’고 했다. 집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편의점으로 가서 즉석 미역국과 조각케이크를 샀다. 맞아, 나를 아껴줘야지. 씩씩하게 살아온 나에게 가장 큰 축하를 해 줘야지. 그 뒤로 떠들썩하게 생일을 보내지 않는 날에도 스스로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인다.

한 끼를 대충 때우는 친구를 보면 타지에서 고생했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밥이라도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엄마들이 그토록 ‘한 숟갈만!’이라며 밥에 집착한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힘든 하루를 보낸 나에게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것을 먹여주자. 직접 하지 않은 음식이라도 스스로에게 정성이 들어간 한 그릇의 위로를 먹이자.

내가했지만 #J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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