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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Feb 23. 2018

달리는 모든 러너들을 신뢰한다

러너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이것'에 관하여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람만큼 알기 힘든 존재도 드물다. 정해진 속성 도 없거니와, 기계나 도구, 물건, 혹은 장소처럼 정해지거나 규격화 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름 여러 사람을 겪어왔다는 생각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나면,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반듯하고 똑똑해 보이는 모습 뒤에 치열한 경쟁심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 같으면서도 내심 따뜻하고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하니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다가도 아무나 곁에 들일 수 없어 누군가를 판단할 때 조심 또 조심 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누군가를 정의하고 판단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면서 동시에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사람들과 연을 맺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선 그들과 생각을 교류하고, 판단하고, 신뢰해야만 한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누군가를 바라보는 몇가지 기준을 나는 갖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드물지만 상대가 러닝을 즐기는 러너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달리는 모든 러너들을 신뢰한다. 그가 평소 취미로 달리는 것 외에 10km 이상의 러닝코스를 완주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러너들은 모두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러닝은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속도와 관계없이, 달리기 시작하면 누구나 조금씩 숨이 차오른다.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느냐에 따라, 폐활량의 차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10분정도 쉬지 않고 달리다보면 서서히 숨이 차올라 턱 끝을 향한다. 대략 1.5km~2km쯤 지날 때다.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러너들은 생각한다.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급해지는 숨을 삼키며 조금 더 달려볼 것인지를. 숨이 차는 것은 달리는 모든 이들에게 찾아오는 당연한 변화다. 이를 감수하며 러닝을 지속할지는 온전히 러너의 판단이다. 더 빨리 달려볼지, 아니면 속도를 늦추며 숨을 고르고 갈지, 아니면 목표에 미치진 못했지만 방향을 바꿔 다시 돌아갈지 등등 숨이 가빠오는 상황에서의 모든 결정권은 러너 자신에게 있다. 

 

 대략 1km당 6분 정도의 여유있는 페이스로 달리면 10km 완주까지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린다. 10km코스를 완주한 러너들은 적어도 1시간 정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몸 속에서 보내는 수많은 신호들과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자신의 몸 상태까지 모든 조건들을 확인하고 그 속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꾸준히 달려낸 사람들이다. 하루키 식으로 말하자면 "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백가지도 더 되지만" 그런 이유들을 반박하며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스텝을 딛어낸 사람들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사람들은 삶의 어떤 고난들이 찾아 오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설령 마지막에 가서 포기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보내는 '이 일이 안되는 수많은 이유'들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10km, 1시간 밖에 안되는 '작은 승리'의 경험이 다른 어떤 일이라도 견뎌낼 수 있는 '큰 승리'의 밑거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언제든 큰소리치곤 하는 자신과의 약속들을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쉽게 뿌리쳐 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작은 승리'의 기억들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이런 작은 경험들을 가진 이들이야말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바탕을 가진 사람들이라 믿는다. 

 

 이것이 내가 달리는 모든 러너들을 신뢰하는 이유다. 그리고 내가 러닝을 꾸준히 지속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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