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1.
이명현의 '별 헤는 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현재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137억 년을 1년으로 축약해서 설명한다. 그는 우주의 시작을 1월 1일 0시, 현재를 12월 31일 밤 12시라고 가정한다. (중략) 인류가 등장한 것은 12월 31일 밤 10시 30분이다.
1년의 끝자락 1시간 30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상에서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로 급부상한다. 12월 31일 10시 30분까지만 해도 채집 생활로 근근이 살아가던 유인원 집단에 불과한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특이점으로 현재의 모습이 됐을까?
2.
집단적 상상은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특별한 능력이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체 하는 것처럼 믿고, 행동하게 만든다. 돈, 신, 교리, 법, 정치, 사상, 신용, 왕권 같은 것들인데 이는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어 온 것들이다. 우리는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세계관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가장 방대한 상상력의 세상은 현실 세계다. 즉, 2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집단지성이 빚어낸 상상의 질서 속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름.
3.
인류는 줄곧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존재였고, 이것은 기술적 진보로 이어졌다. 진보는 때로는 위대한 것이기도 했고, 파괴적인 것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이 진보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며 사실은 진보 자체가 목적이고, 그에 수반하는 현상은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4.
문득 호모 사피엔스가 언젠가는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설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5.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이 자신의 시간표를 인간들의 행동에 강요한 직후부터 학교 역시 정확한 시간표를 채택했으며, 병원과, 정부기관, 식품점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조립 라인과 기계가 없는 장소에서도 시간표가 왕이 되었다. 공장의 교대 근무 시간이 오후 5시에 끝난다면 동네 술집은 5시 2분에 문을 여는 것이 나왔다.
영국의 몇몇 공장에서 채택했을 근무 시간표가 현대 시간의 기반이 됐을 것이라고 공장주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런 급진적 변화가 개개인의 삶까지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고, 이는 앞으로의 혁명에서도 그럴 것이다.라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주장)
6.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우주 어딘가 쯤에서 지구를 관찰한 듯한 전체적 시각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개괄하면서도 개별적이며 세세하게 사건들을 분석하는 부분이다. 표면적 현상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세계도 탐구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이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나' 이전의 인류가 궁금하다면 추천한다. 논리적이면서 재미있기까지 한 인류의 경험과 활동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7.
잘 정리된 후기를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내 지적 수준은 왜 아직도 농업혁명 수준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