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밀양
사람은 정신승리하며 살아간다. 누군가 나한테 해준 말이었는데 깊이 공감했다. 밀양의 전도연(신애)이 관객의 눈에는 그저 광기 어린 영혼으로 보여도, 사실은 우리의 삶과 전반 다르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이 영화를 보며 매번 고통스러워 스크린을 볼 수 없는 감정도 나의 삶이 신애처럼 흘러가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운 신애에게 믿음은 삶을 지탱한다. 그러나 동시에 단단히 보여도 쉽게 깨져버리는 감정이다. 위기가 다가올 때마다 신애는 새로운 믿음으로 원동력을 찾아낸다. 허세 허식도, 종교도, 하느님을 향한 분노도 신애를 일시적으로 구원하는 듯하나 결국 신애는 혼자다. 그녀의 옆에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송강호(종찬)를 밀어내는 이유도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미 남성(사별한 남편)의 상실을 경험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정신승리, 믿음이 삶을 이어가게 만든다. 사람은 믿으며 살아간다. 아무리 지옥 같은 인생이라도 매일 햇살은 눈부시게 세상을 비추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어느 곳이든. 내가 무엇이라도 하면 (혹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다고 믿던)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태양은 변하지 않는다. 그 변함없는 햇살 안에서 우리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괴로운 사람들은 해가 뜰 때 가장 고통스럽고, 잠을 잘 때 가장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눈뜨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게 상쾌하지 않고, 현실을 어떻게 버틸까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건 인간의 저주받은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정신승리를 하며 살아간다. 그게 종교이든 아니든 사람이든 물체든 상관없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사람의 삶이다. 때로는 내 감정이 세상과 일치하지 않아 분노하거나, 심지어 신에게까지 버림받은 영혼이라 생각할 지라도 인간은 언제나 그랬든 다른 믿음을 찾아내고 그걸 검증하기 위해 유사한 정보를 모으며, 그에 맞게 행동한다. 그게 깊어지면 실망하고, 우연의 사건으로 고통스러워하고, 나의 고통을 누구도 씻어주지 못하더라도 인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로 의지를 찾아간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은 많지만 일단 내가 바라본 하나의 시선은 이렇다.
난 유독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고, 또 질문을 자주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질문을 할 때 신중하게 되고, 질문을 받을 때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질문을 받을 때 제일 고통스러운 부분은 모를 때가 아니다. 나도 사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 불현듯 무시해버렸던 감정이 떠오를 때이다. 신은 있나요?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하나요? 고통 속에서 괴로울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공포와 동시에 자기연민에 빠져버린다.
신애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현실이라는 세계관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 내려놓은 생각들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여자다. 오늘 신애를 만나면서 또다시 고민에 빠졌고, 스크린 너머 가상인물인 그녀를 직접 달래주지 못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