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슈사쿠의 <침묵>
우리 언니에겐 작은 책장이 하나 있는데 책장엔 종교 관련 서적을 모아져 있다. 난 좀처럼 거기에 있는 책을 잘 안 읽는데, 그곳에 바로 이 책이 있었다. 그만큼 내가 그다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했다. 종교를 워낙 멀리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놀랍게도 내가 가장 흥미 있게 읽은 책들 중 하나가 바로 침묵이다. 뭔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종교 관련 책이라 읽기 싫은데 내용이 워낙 괜찮아서 외면하기 싫다고 해야 하나
종종 펼쳐보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영화로(게다가 주인공은 리암 니슨!!)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책 리뷰를 쓴다.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하느님은 왜 모든 일에 침묵하시는가? 나는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안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간단한 질문을 복잡하게 대답하고 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들이 너무나도 선량한 사람들이기에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페레이라는 종교에서 배신이라 할 수 있는 배교를 선택했다. 대신 자신을 믿고 따른 신도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다. 저자는 일단 페레이라를 최소한 이해하고 옹호하는 것 같다. (이런 뉘앙스 때문에 엔도 슈사쿠는 종교계의 비난을 받았다) 인간의 박해를 외면하지 못하는 착한 인간의 속성을 저자는 믿고 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내가 종교인은 아니라 하느님이 침묵하시는 일에 대해선 차마 쓰지는 못하겠고. 대의를 위해 혹은 목적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당할 상황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로드리고 신부처럼 극한의 상황은 아니어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몇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그것을 사소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잦다. 반면 인간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작은 감정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는 이는 이 현상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페레이라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놓는 편이 차라리 괜찮다고 생각한다.
요즘 어떤 막장드라마 보다도 흥미로운 뉴스들을 볼 때마다 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위험한 사람이구나. – 이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며, 차가운 물속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까지 별일 아닌 일로 치부한다. 이들에겐 타인의 고통도,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도 일절 없다. 로드리고처럼 갈등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침묵하더라도 같은 땅에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의 아픔은 침묵해선 안 된다. 그게 상식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의 고통, 우리들이 느끼는 아픔이 언제나 의미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