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음치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 초등학교 5학년 음악 시험 때라고 기억된다. 생각과 다른 음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 DNA에는 없는 재능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음악의 전령사 '역할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음악적 기호로 나를 증명하기로 했다. 나만의 추천 리스트를 작성한 후 단골 레코드 가게에 가서 tape녹음을 의뢰했다.
어디서 읽었는데 한 사람이 먼저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또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질 때 그것은 선물이 된다고 하더라. 내가 먼저 느낀 아름다운 음악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시작한 120분의 공테이프 이야기 속에 공통분모가 있기를 바라며-
-지인에게 보낸 글 중에서-
길치가 된 배경에는 시력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는 추론을 해본다. 근시가 있는데도 안경에 대한 불편으로 흐릿한 일상을 유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주위 지형지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다녔다. 물론 관심 밖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길 헤매기를 무수히 반복하다 보니 나름의 내공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지형지물을 기억하려 애쓰다 보니 길치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몸치다. 음치면 박치일 확률이 높고 자연스레 몸치로 이어지는 게 정설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요즘 시대에는 감점 요소이다. 순간의 감정을 노래로, 몸짓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실이 통탄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이 차오르면 기록하는 것이다.
'반사적 광영 '이라도 누리고 싶어서일까. 내게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욕심냈었다. 노래의 힘을 탐한 대가로 청춘의 신열을 앓다가 이연(異緣)이 되었다. 속절없이 추억을 소환하는 노래를 듣고 난 후, 늦은 밤 음치라는 사실도 잊은 채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관통하며 통찰을 안겨준 기억과 내일을 위한 수면을 맞바꾼 채. 나는 어떤 노래로 기억될까. 어떤 노래를 듣다가 나를 떠올릴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