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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Dec 07. 2021

단상

날 선 청춘의 기록

| 가뭇없이 사라지다! |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의 문이 닫혔다 열렸다 한다.
마치 서랍 속의 여자처럼

내 마음의 서랍들이 칸칸이 변주를 한다.

가수면 상태인 어느 오후.

창졸간에 일어난 일

깨어 있어야 반응을 하는데

이따금 잠이 들어버린다.
무안도, 무례함도 더는 자극이 되지 않을 때

무감해진다.
 

김형경 작가는 
살다 보면 자신을 소멸시켜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요즘 내가 이 상황에 놓인 모양이다.
더 뚜렷한 내가 되기 위해

존재의 시그널은 점멸 중 상태
신호를 놓치면

가뭇없이 사라진다.     


  

| 동사와 형용사 사이를 거닐며  |



연유를 알 수 없이 시작되는 슬픔에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길 잃은 마음 자락 끝에 서서

속절없이 나부끼고 있다.
어디로 가면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깊은 한숨이 밀려온다.
눈물이 소요되는 순간

적나라한 고독의 순간과

직면하고 있다.


주위

모든 이들은 하루치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잠들어 있다.

나는

동사와 형용사 사이를 거닐며
적요한 공간 속에서 대치 중이다.




| 눈물 구름  |



진실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더라도

나에게 이익됨이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란다.


이 말은

눈물 구름을  몰고 온

도화선이 되었다.

어찌 보면 위로받기 위한 말장난

가여운 자위에서 비롯된 말장난

내가 절실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익됨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일까?

끝 간 데 없이 쏟아지는 눈물의 범람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살았던 날들에 대한

적정량의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간절함이 비켜간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확인하고

마음도, 눈물도 멈췄다.



| 통찰 |



 오늘은 종일 여행사를 기웃거렸다.
 미리 다녀온 휴가를 가끔 잊은 사람처럼 괜히 뭔가 기다려지고, 설렌다.
 주위 사람들의 여행 계획에 당사자들보다 내가 더 들뜬 것 같다.
 대리만족일까? 떠나는 이들을 보면 괜히 내 마음도 좋아지고 나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언젠가 저들처럼 떠날 수 있다는 희망!
 그러다 문득, 오늘의 내 모습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림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경, 어디서 봤을까?
 다시 시작된 고민. 못 말리는 문학적 건망증이 발생했다.

 집에 와서 한참을 책들 사이에서 방황하다 불현듯 느낌이 가는 책을 집어 들었다.
 페이지를 몇 차례 왕복한 끝에 찾아낸  전경린의 『물의 정거장』이다.



 그해에 금주는 히말라야 트래킹을 가지 않았다. 어차피 여행 상담은 몇 년에 걸쳐 계속된 부정기적이고 강박적인 취미활동 같은 것이었다. 티베트 성지 순례 여행이나 이집트 요르단 터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에 이르는 지중해 완전 일주 여행,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실크로드 여행이나 일본 3대 온천이 들어간 디럭스 북해도 일주.   <다섯 번째 질서와 여섯 번째 질서 사이에>


 이런! 나도 그 소설 속에 금주가 되는 건 아닐까?

 해마다 반복되는 알레르기나 감기처럼 그렇게 지나가는 열정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로 여행이란 티켓을 마음속에 끊어 놓고 사는 여자!

 내년에도 같은 모습으로 이곳에 앉아 있을 나를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그리고 늘 뭔가를 그리워하며 조용히 늙어 가는 건 아닐까, 라는 조바심도 난다.



| 일상다반사  |



 누군가를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타인과 밀착된 그는 항상 분주하고 복잡하다. 그에 비해 나는 너무 단조롭다. 사람들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걱정하고 사랑한다. 열정에게 8할을 내주고, 나머지 생의 요소에서는 달관했다고 해야 하나. 조금은 심심한 생활 속에 나름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를 보면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몇몇의 누군가도 그랬다. 도대체 왜 다들 그토록 삶을 복잡하게 살고 있는 걸까? 본디 삶이 그러한 것일까?
 주문한 책이 늦거나 간신히 구한 책의 주문 취소 요청을 받게 되어 길길이 날뛰고, 러시아에 미쳐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금방 마음을 열어 주고, 절판된 책을 전해 주는 이와 몇 시간 동안 담소를 나누고, 노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종일 끙끙거리는 내 모습을 누군가는 낯설어했다.
 지금은 서로에게 조금씩 면역이 생겨 가고 있어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처럼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는 누군가의 모습에 다소 짜증이 밀려온다.
 제발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않았으면, 삶을 단순화했으면 좋겠다.
 삶을 복잡하게 사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인 것 같다.
 같은 일도 누군가에게 일어나면 복잡해 지고는 만다.



글을 닫기 전 고백하자면 당분간의 나의 글들은 오래전 글들을 퇴고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느라 육아일기 외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과거의 글들은 다시 쓰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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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얀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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