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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Jul 14. 2022

엄마의 이름


가족들의 이름이 동시에 바뀐다면 그야말로 대혼란일 것이다. 변화의 서막은 2018년 초여름, 엄마의 전화 한 통으로부터였다. 마음에 안 드신 당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하셨다. 칠십 년을 참으셨으니 오래 참으신 셈이었다. 나는 엄마의 계획에 적극 찬성을 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럼, 나도 같이 바꿀까?”라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께 물었더니 “그래, 그러자”라고 하셨다. 엄마의 결심이 잔잔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개명이 유행도 아닌데 한 집안에 네 명의 이름이 갑자기 바뀌었으니 말이다.         


 

엄마의 이름은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권(權)생(生),권세를 타고났다’는 뜻이다. 엄마에게는 거창한 의미 보다는 그저, 뒷집 송아지 태어난 날에 받은 못마땅한 이름에 불과했다. 어디 가서 이름을 말씀하실 때마다 창피해하셨다. 남자 이름 같고, 발음도 강해서 여러 번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다반사였다. 마음 한쪽에는 늘 남자 같은 이름 때문에 당신의 삶이 퍽퍽하고, 고단했을 거라는 생각이 있으셨다. ‘차라리 그 시절의 흔한 여자아이 이름으로 해주지’라며 외할아버지를 원망하셨다.      


     

“할머님,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한 번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박자, 권자, 생자…….”     



칠십 평생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러 간 작명소. 그곳에서 이름 몇 개를 받았다. 우리는 발음이 쉽고 다정한 느낌의 ‘연주’와 받침이 없고 지적인 느낌의 ‘주아’가 됐다. 평생 불린 이름들이 몇 달 만에 뚝딱 바뀌는 순간이었다. 개명 허가를 받고 기분이 묘했다. 다른 사람들이 부를 이름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 왠지 통쾌하고 짜릿했다. 마흔 넘은 나도 이런데 칠십의 엄마는 오죽할까 싶다. 엄마는 새 이름이 여성스럽고 세련된 느낌이라 더 마음에 들어 하셨다.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당신 이름을 부를 때, 더는 부끄럽거나 여러 번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엄마는 바뀐 이름을 많이 불러주는 게 좋다고 하셨다. 전화 통화 첫 마디에 늘 “주아!”라며 천연덕스럽게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말이다. 엄마 덕분에 남의 이름 같던 새 이름이 점점 입에 붙었다. 나도 엄마의 예쁜 이름을 자주 불러 드린다. 딸로서 엄마의 이름을 바꾸는 일에  함께 하길 잘한 것 같다. 그동안 마음에 안 드는 이름 데리고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던 우리 엄마, 앞으로는 마음에 꼭 드는 이름과 함께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매일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난 후,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연주 씨, 뭐해요? 밥은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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