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아기와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자 체력을 소진해야 하는, 즐거운데 힘이 들고 진이 빠지지만 행복한 아이러니한 시간이다. 어린이집 이 년 차. 말도 부쩍 늘고 이런저런 놀이에 재미를 느끼면서 주말이 되면 노는 것을 즐긴다. 아기의 웃는 모습을 보면 마냥 놀아주고 싶지만 무제한적인 놀이는 점점 체력을 고갈시킨다. 일곱 시 전후만 되면 눈을 떠서 밤 아홉 시까지 쉴 새 없이 떠드는 아기. 말이 없는 것보다는 나은데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서서히 떨어지는 체력 배터리에서 필요한 건 낮잠 타임. 요새는 이 낮잠마저 거부한다. 나는 놀 거야. 한 시에는 취침한다는 어린이집 생활에 맞춰 누워도 빠딱빠딱 일어나서 집 안을 활보한다. 이번에도 한참을 놀았다. 도저히 잘 기미가 없어 최후의 수단 유모차를 태우고 집을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곧 곯아떨어지는 아기. 이럴 거면서 왜 잠을 이기려 드는지.
집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가 되었다. 조심히 침대에 누위는 데 잠이 깼다. 안 돼. 겨우 달래고 달래어 침대에 누웠다. 잠깐의 휴식 시간. 꿀맛이다. 방바닥을 닦고 TV의 얼룩을 닦고 나니 체력 충전이 필요했다. 잠깐의 독서를 하기로. 두 장을 읽었나. 아기가 잠에서 깼다. 망했다. 얼마 자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방에 들어가 보니 분명 잠이 오는데 잠깐 깬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재우기 시도. 누이려면 싫다고 발버둥을 쳐서 소파에서 겨우 함께 잠들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뜨고 다시 침대에 눕혔다. 눕히는 순간 칭얼거렸지만 어쨌거나 숙면을. 다행이었다. 그렇게 장장 세 시간 가까이를 잤다. 저녁이 걱정됐지만 뭐 지금은 즐겼으니. 카르페디엠
저녁도 유모차였다. 아기가 태어나고 집 근처 밤거리는 잘 돌아다니지를 않는다. 재우기에 급급하니. 재우고 나면 잠들기에 급급하니. 오랜만의 밤 풍경은 다소 낯설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는 연인들이 서로를 배웅해 줬다. 단지 옆 산책길에는 나 홀로 바삐 걷는 이들이 꽤 있었다. 아기는 유달리 쌩쌩했다. 집 근처 어린이집도 두 번이나 돌고 나서야 쉼 없는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열한 시. 잠을 많이 잤으니 논다는 유희 보존의 법칙을 잘 지키는 아기. 아주 계획형이구나. 야간행 유모차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