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소 Jul 04. 2024

야간행 유모차

잠을 이기지 마시옵서서

주말이다. 아기와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자 체력을 소진해야 하는, 즐거운데 힘이 들고 진이 빠지지만 행복한 아이러니한 시간이다. 어린이집 이 년 차. 말도 부쩍 늘고 이런저런 놀이에 재미를 느끼면서 주말이 되면 노는 것을 즐긴다. 아기의 웃는 모습을 보면 마냥 놀아주고 싶지만 무제한적인 놀이는 점점 체력을 고갈시킨다. 일곱 시 전후만 되면 눈을 떠서 밤 아홉 시까지 쉴 새 없이 떠드는 아기. 말이 없는 것보다는 나은데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서서히 떨어지는 체력 배터리에서 필요한 건 낮잠 타임. 요새는 이 낮잠마저 거부한다. 나는 놀 거야. 한 시에는 취침한다는 어린이집 생활에 맞춰 누워도 빠딱빠딱 일어나서 집 안을 활보한다. 이번에도 한참을 놀았다. 도저히 잘 기미가 없어 최후의 수단 유모차를 태우고 집을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곧 곯아떨어지는 아기. 이럴 거면서 왜 잠을 이기려 드는지.

집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가 되었다. 조심히 침대에 누위는 데 잠이 깼다. 안 돼. 겨우 달래고 달래어 침대에 누웠다. 잠깐의 휴식 시간. 꿀맛이다. 방바닥을 닦고 TV의 얼룩을 닦고 나니 체력 충전이 필요했다. 잠깐의 독서를 하기로. 두 장을 읽었나. 아기가 잠에서 깼다. 망했다. 얼마 자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방에 들어가 보니 분명 잠이 오는데 잠깐 깬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재우기 시도. 누이려면 싫다고 발버둥을 쳐서 소파에서 겨우 함께 잠들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뜨고 다시 침대에 눕혔다. 눕히는 순간 칭얼거렸지만 어쨌거나 숙면을. 다행이었다. 그렇게 장장 세 시간 가까이를 잤다. 저녁이 걱정됐지만 뭐 지금은 즐겼으니. 카르페디엠

저녁도 유모차였다. 아기가 태어나고 집 근처 밤거리는 잘 돌아다니지를 않는다. 재우기에 급급하니. 재우고 나면 잠들기에 급급하니. 오랜만의 밤 풍경은 다소 낯설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는 연인들이 서로를 배웅해 줬다. 단지 옆 산책길에는 나 홀로 바삐 걷는 이들이 꽤 있었다. 아기는 유달리 쌩쌩했다. 집 근처 어린이집도 두 번이나 돌고 나서야 쉼 없는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열한 시. 잠을 많이 잤으니 논다는 유희 보존의 법칙을 잘 지키는 아기. 아주 계획형이구나. 야간행 유모차는 끝이 났다.


세자 부디 잠을 이기려 하지 말고 그냥 코~~ 주무시옵서서!!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 참여 수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