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
난생처음 이사를 한 지난여름, 시간은 조용한데 빨라서 어느덧 한겨울을 안내하고 있다. 바쁜 게 좋다 안 좋다를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직장은 혼란스럽기만 하고 덕분에 일상의 짬은 사치가 되어 정신이 혼탁해져 가는 것 같다. 뇌에 아주 고급진, 그리고 맑고 순수한 공기의 공급이 진정 필요한 때이다. 가끔씩 뛰는 러닝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지만 이마저도 현실과의 조우에 에너지를 뺏기면 시도하지 못하게 된다. 몸이 무겁더라도 나가면 될 것을 늙은 몸뚱이가 휴식을 원하면 결국 항복을 하게 되는 최근의 현실. 이를 어쩌나. 거울 속의 나를 만나면 얼굴이 그늘져가는 것이 느껴지니 이렇게 아. 죠. 씨 가 완성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죠. 씨에게 행복을 주는 이가 있으니. 누구보다 한 살을 더 먹는 것을 기다렸던, 새해 눈을 뜨자마자 이제 다섯 살이라고 키가 커진 것 같다며 자랑하는 남자 아기다. 티 없는 맑은 눈을 부릅뜨며 기쁨을 포효할 때면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합쳐진 천연 비타민제가 따로 없다. 가끔씩 깜짝 놀랄 정도의 난이도 있는 단어를 내뱉는 수준으로 말수가 늘었고 덕분에 대화라는 것이 되는 요즘, 아기와 함께 하는 삶이란 꽤 값진 인생이란 걸 몸소 체험하고 있다.
내 눈에는 여전한 아기가 이제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다. 쫄랑쫄랑 거리며 어린이집을 걸어갔던 녀석의 모습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원복을 입고 유치원을 간다 한다. 아기의 성장과 나의 늙어감이 비례한다고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지만 아기의 행복과 연결된다면 늙어감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이 한 몸 희생하여 가족의 행복을 지킨다면야. 유치원 입학하게 된 아기를 둔 나의 요새 마음가짐이다. 아마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대하는 마음일 테고.
"나랑 맞는 것 같아."
유치원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아기가 유치원 투어를 하고 나와서 한 말이다. 아직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않고 첫 느낌만으로 맞는다는 평가를 내리다니.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아빠와는 달리 새로운 환경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아기. 티 없는 순수한 판단에 또 한 수를 배운다. 하루의 걱정보다는 하루의 설렘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아기. 내가 그늘져 있으면 아기도 그늘져 있겠고 내가 힘이 나면 아기도 힘이 날 것이니, 나도 아기와 같이 설레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또 하나의 하루가 나에게 왔고 그 하루를 소중히 쓰는 사람, 그런 설레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 유치원 입학을 하는 아기가 나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나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 오늘은 한 수 배운 아빠가 멋진 아들의 유치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