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었다
일반 유치원이냐 영어 유치원이냐. 공립이냐 사립이냐의 선택지에서 최종 결정한 일반 유치원. 유치원 추첨이 또 뭐라고. 별 것도 아닌 거라며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결과 발표 시간만 오매불망 기다리다 1순위 당첨 소식에 나이쑤!라는 기합과 쾌재가 합쳐진 슈퍼 호들갑! 을 펼쳤던 나란 아빠. 원했던 유치원이 확정되고 거실에서 혼자 노는 아이를 바라보니 훌쩍 더 커 버린 느낌이다.
"몇 키야?"(키가 몇 센티냐는 질문이다)
"비밀이야"(손가락으로 쉿!을 하며 목소리를 낮추는데 늘 다 들린다)
"지금 세시 사십 분이지?"(LED시계의 3:04분을 말한다)
"아빠가 네 살 더 많네. 그래서 엄마보다 키 크네."(나이가 많으면 키가 커지는 줄 안다)
"아하! 그렇구나!"(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직한 감탄사를 내뱉는다)
연령에 맞는 반 인원수가 초과되어서 월반을 한 아이(생일이 빨라서 가능했다)는 형누나들 덕분에 부쩍 말이 늘었다. 동물이 최고의 흥밋거리였던 아이는 동물보다는 숫자로, 레고 듀플로보다는 오리지널로, 책보다는 tv로 관심이 바뀌기도 했다. 심지어 tv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를 줄도 알게 돼서 스스로 껐다 켰다를 자유롭게 할 줄도 안다. 숫자를 알게 돼서 지정한 시간이 되면 알아서 tv를 끈다는 것이 월반의 순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tv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은 팩트다. 가만 보니 이사를 하면서 배치했던 거실 책장화가 무색할 만큼 tv 시청 비중이 높은 것도 같다. 안 되겠다 싶어 갑자기 당근마켓에 접속한 시간은 베이글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잠시 즐겼던, 햇살이 따뜻했던 일요일 오전 9시 22분이었다.
당근마켓 홍보대사는 아니지만 아이가 있는 집이면 꽤 유용한 앱이 당근마켓이다. 요새 유아용품은 고가도 많아서 저렴하게 이용도 가능하고 육아부모들이 올린 물건들을 보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판매자가 올린 물건 리스트를 보며 아기의 나이를 추측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당근마켓으로 책을 검색해보려 한 것은 첫째는 tv를 많이 보는 것 같은 아이 때문이요. 둘째는 거실의 책장에 빈 공간이 많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사주고 싶은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주고 싶은 책은 디즈니 영어 책. 책에 펜을 대면 글자를 읽어주는 세이펜을 적극 활용해 보자는 마음과 함께 곧 떠날 중국 상하이 여행의 디즈니랜드 체험 동기부여를 위한 선택이었다.
당근마켓을 열고 바로 디즈니 영어책을 검색했다. 시중 최저가 25만 원이 7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업로드된 사진을 보니 책 상태도 깔끔해서 바로 예약을 걸었다. 검색어가 유아 도서류로 분류되서였을까. 당근마켓 노출화면에는 다른 유아 도서들도 줄지어 나왔다. 요새의 당근마켓 알고리즘인 것 같다. 알고리즘의 유혹에 빠져 3만 원어치를 더 담았고 오전 10시 오전 12시 오후 3시 오후 4시에 걸쳐 차로 도보로 책을 날랐다. 와이프는 폭주한다 했지만 물티슈로 닦은 책들이 책장에 꽂히니 마음이 풍족해졌다. 아이가 tv에서 책으로 관심을 돌리게도 됐고 거실 책장에 책이 채워지기도 했고 책을 나른 몸은 고됬지만 마음은 가벼운 하루였다. 당근마켓 10만 원어치 구매는 상당한 풍족함을 안겨다 주었다. 아이 유치원 입학 3개월 전, 부(父)의 당근 폭주와 자(子)의 독서 관심이 시너지가 되니 잠시 나는 부자(富者)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