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함을 조심하세요

모든 것을 먹어 치웁니다

by 이보소

첫니가 제법 자란 생후 9개월 남아. 일어이 자유로워지고 덩달아 활동성도 증가한다. 잠잘 때와 분유 먹을 때를 빼놓고는 하루 종일 계속 움직인다. 육아는 체력전이라는 말. 진리다.


쉼 없이 움직이는 아기가 순간 조용해질 때가 있다. 가령 청소기나 빨래를 돌린다거나 이유식이나 분유를 만들 때처럼 자신에게서 집중을 하지 않을 때, 잠시 엄빠에게서 자유로워지면 쉼 없이 움직이는 아기가 조용해진다. 이럴 때는 보통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아기한테는 위험하지 않은 일들 이겠지만) 엄빠의 시선에서는 놀랄 노 자의 일들 벌어진다.


첫째. 책을 먹다.

거실 한편에 책장이 있다. 일층부터 삼층까지. 기기 시작하면서 일층의 책들은 먹잇감이 되었고 일어설 줄 알고부터는 이층의 책들이 타깃이 되었다. 아직 삼층은 공략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기기 시작하고 첫 니가 나면서 책장의 책은 최애 놀잇감이 되었다. 책을 마구 끄집어내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그 책들을 문다. 위아래 네 개씩의 치아로 책의 모서리를 갉아먹는다. 가끔씩 종이가 입에 들어가기도 한다. 혹여 기도가 막힐지도 모르므로 이때는 반드시 종이를 빼내야 한다. 포인트는 절대로 입을 벌리지 않는다는 점. 나이와 체급의 차이가 상당하지만 무자비한 힘겨루기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이제 기기 시작하는 첫 니가 나기 시작한 아이라면 페이지가 두꺼운 보드북 책을 추천한다. 책이 찢길 위험도 종이가 입에 들어갈 위험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둘째. 핸드폰 충전기를 먹는다.

업체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최근 태어난 늦둥이가 우리 아기와 개월수 차이가 안 나는 세 남매의 아버지였다. 업무 얘기는 뒤로 하고 육아 얘기로 꽃을 피웠다. 아기가 셋이라는 위엄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목소리에는 육아 자신감이 충만하였다. 그러던 중 아기의 공통 행동에 서로 웃음꽃을 틔웠는데 바로 핸드폰 충전기였다.

"저희 아기도 핸드폰 충전기를 그렇게 씹어요. 몇 개는 고장 났잖아요"

"저희는 와이프가 어느 날 충전기를 대량으로 사 오더라고요."

그렇다. 첫 니가 간지러운 건지 아님 뜯기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하다 싶으면 축 늘어져 있는 기다란 충전기 줄을 잘근잘근 씹고 있다. 혹여 아기가 전기에 찌릿하는 불상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충전기는 멀리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 있던 충전기가 어느 순간부터 안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셋째. 리모컨을 먹는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켜지는 tv소리. 귀신인 줄 알았는데 tv밑에서 조그만 아기가 리모컨의 윗부분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켜진 tv를 보면서 리모컨을 팝콘 삼아 열혈 시청하는 아기. 물 묻은 손으로 허겁지겁 리모컨을 뺏어보지만 아기는 싫다고 으으으- 하며 리모컨을 더 꽉 잡는다. 주위에 보이는 다른 물건들로 물물교환도 시도해 보지만 이미 꽂힌 리모컨을 쉽게 줄 리 만무하다. 또다시 말이 안 통하는 아기와 힘겨루기를 진행. 겨우 떼놓은 뒤 휙 하고 리모컨을 숨긴다.

신기한 건 눈앞에서 사라진 리모컨을 잘도 찾는다는 것. 꽤 많은 숨바꼭질이 진행되니 리모컨의 빨간 전원버튼도 눈에 익는 현상이 발생했다. 실컷 깨물다가 쿡쿡 눌러보는 아기. 리모컨이 망가지면 육퇴 후의 꿀맛 같은 tv시청이 불가하니 안 보이는 곳에 잘 숨겨놓아라.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내는 것이 내 아기일지라도.


구강기 시기에는 모든 것이 입으로 통한다. 조그마한 손으로 탐색을 하다가 결국은 입으로 종결하는 첫니의 소유자. 조용함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방심하면 핸드폰 충전기 줄을 아작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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