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와의 결혼 시절만 해도. 아니 사실 결혼 시절이라 했지만 결혼 구일 만에 임신 소식을 접했으니 임신 시절이기도 한 그때. 어쨌거나 결혼과 임신이 함께 공존했던 평온한 시절, 나는 최소 십분 전에는 출근을 완료하였다. 자칭 근태 모범생.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을 때의 사무실 속 고요한 분위기를 아시는지. 왁자지껄한 틈 속에서의 '나'보다는 텅 빈 여유로움 속에서의 '나'를 더 즐기는 '나'.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하는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조금의 에너지만 써도 정신이 금방 한 곳으로 모일 수 있는. 즉, 업무의 비용 효율성면에서 확실히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일찍 도착하는 출근을 즐겨했다. 그래야 하루의 업무가 잘 풀리기도 했고. 적어도 첫 니가 나는 아기와 함께 살기 전에는.
아기가 첫 니가 난 생후 육 개월 째. 결혼 시절과 비교하면 출근 시간이 확연히 달라졌다. 지하철에 내리면 이미 출근 시간이라는 알림이 뜬다. 회사 건물이 지하철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기에 하차 후 오분 남짓이면 사무실에 도착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사무실 도착 후 업무 준비를 마치면 출근 시간에서 십 분은 족히 넘어 있다. 스마트 오피스제라 같은 팀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구조가 아니더라도 지각이라는 핸드폰 알림은 스스로에게 썩 유쾌한 메시지는 아니다.
기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생후 육 개월부터는 체력적으로 더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있던 신생아 시절이 좋을 때라는 육아 선배님들의 말씀은 '참'이었다. 신생아 때가 수면 부족의 나날이었다면 첫 니가 나면서부터는 수면 부족과 함께 아기 잡기 활동이 추가되었달까.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아기. 살랑살랑 나는 치아가 간지럽기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입으로 가져가는 시기.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저리로 가면 위험하다 싶어 이리로 데려오고 이리로 오면 위험한 행동을 하니 저리로 데려다 놓고. 잡고 잡히는 추격전.
아기와 활동 시간은 아침 일곱 시에서 저녁 아홉 시까지. 나는 출퇴근이란 핑계로 오고 가는 지하철 속에서 잠시의 휴식이라도 취하지만 와이프는 하루 온종일 아기와 함께 한다. 아기가 활동하는 동안 아침 점심 저녁 이유식을 먹이고 중간중간에는 간식까지 챙겨 줘야 한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낮잠 시간이 있지만 삼십 분 내지 한 시간의 짤막한 시간이다. 이 시간마저 쉴 수 없는 것이 바로 육아. 이유식도 손수 만들어 먹이느라 아기의 낮잠 시간은 이유식 재료를 만들어 놓는 시간이기도 하다. 혹여 이유식 재료가 만들어져 있다면 그 시간은 청소기를 돌리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는 등등. 집안일을 하는 시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나의 퇴근 시간이 와이프에게는 곧 해방의 시간이고 이를 알기에 어떻게든 칼퇴를 하려 한다. 하지만 광고업이라는 특수성에 가끔은 늦은 퇴근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미안함이 샘솟는 날이 된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못난 남편 두어 미안해.' 같은 마음이 용솟음치기도 하고.
아직 스스로 잠이 들지 못하는 아기와 한 방에서 자는 생활도 반년. 중간중간 새벽녘에 아기가 깨서 달래주다 보면 우리 부부는 모두 잠을 깬다. 나는 숙면이 아닌 잠이란 걸 경험한 채 출근을 하고 와이프는 선잠을 자다가 아기와의 또 하루를 맞이하고. 수면 부족으로 멍해진 상태로 기어 다니는 아기를 잡기에 바쁜 하루하루가 축적되었다. 피로감은 쌓여갔고 체력은 점점 바닥을 향해갔다. 의식하지 못한 채 서로는 지쳐가고 예민해져 갔다. 불이 났을 때는 초기 진화가 중요하다. 누적되는 피로감이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불꽃이 될 것 같아 슬며시 제안했던 초기 진화법. 교대 근무제였다. 군대에서 배운(?) 불침번의 방식을 육아에 접목할 줄이야.
새벽에 깨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각방 분리를 통해 잠잘 때만이라도 제대로 자기로 했다. 기본 가이드는 이러했다. 일을 하는 평일에는 와이프가 아기와 함께 잠을 자고 주말에는 내가 아기와 함께 잠을 자는 방식. 와이프가 힘에 부치는 날이거나 다음 날의 업무가 여유가 있다면 평일에도 아기와 함께 잠을 청하며 와이프의 부족한 체력을 보충해주기도 했다. 결혼 때는 금기시했던 각방 분리지만 이렇게라도 잠을 청하니 서로의 체력은 조금씩 충전이 되었다. 영원이라는 장엄함은 존경하지만 영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시라는 변칙 소스도 필요하다. 육아는 체력전이기에.
육아를 전담하지 않는 나도 힘이 부치는데 나보다 체중이 덜 나가는 와이프는 오죽할까. 때문에 출근 시간의 마지노선까지 아기를 보다가 출근을 하는 것이 나의 패턴이 되었다. 와이프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안 되는 십 분일지라도 십 분의 늦은 출근은 그나마 마음의 미안함을 조금은 덜 수 있는 일이다. 지극히 내 입장이지만.
오늘 역시도 출근 시간의 마지노선까지 아기를 보다가 와이프를 깨웠다. 부스스한 머리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는 와이프. 아빠를 배웅하는 아기를 뒤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입구를 향했다. 그런데 젠장 또 이 아저씨다. 한 명이 정원인 에스컬레이터의 계단에 턱 하고 정승처럼 버티고 있는 자. 에스컬레이터의 길이도 길어서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데 아마도 이 자 때문에 지하철을 놓칠 것 같다. 이번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은 확정이다. 좀 비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길어봤자 삼십 초 정도의 시간 단축이겠지만.
심리란 참 신기하다. 놓칠 줄 알았던 지하철은 떠나지 않고 날 기다렸고 자포자기의 심정은 기쁨이란 마음으로 변했다. 덕분에 오늘은 지각쟁이에서 벗어날 것 같다. 아직까진 앞이 보이진 않지만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는 부푼 희망을 항상 안고 한강을 건넌다. 방긋 웃는 아기의 얼굴이 반짝이는 한강물 위에 두둥실 떠올라 있다. 육아하는 모든 이들이여 오늘도 당신들을 존경하다. 육아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무나 하지 못하는 위대한 일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