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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Apr 12. 2023

아들을 처음 그렸습니다

언젠가는 날 그려주는 아들을 기대하며

아침에 떨어질 때마다 오열을, 점심에는 밥을 잘 못 먹기도 했는데 이제는 완밥에, 떨어짐도 조금은 익숙해진 어린이집 생활 5주 차입니다. 언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한 달의 어린이집 생활에 서서히 적응을 해나가는 대견한 14개월의 아들입니다.

대견한 아들의 새로운 흥밋거리를 위해  스케치북과 손에 묻지 않는 크레파스(손에는 안 묻지만 입으로 먹어버리는)를 준비했습니다. 자신이 쥔 크레파스에서 색깔이 나오니, 손이 움직이는 대로 흰 도화지에 얇은 선이 생기니 재밌어합니다. 얼마나 열중을 했는지 툭 튀어나온 조그만 입에서 침 한 방울이 주욱하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를 알고 ''를 발음하는 아들을 위해 공룡 그림을 그려줍니다. 완성된 공룡 그림을 보고 "이거 티라노사우루스야."라고 하니 ''를 외칩니다. 그림이 아주 이상하진 않은가 봅니다.

용기를 얻어 악어도 그려봅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아거!"라고 말해주 아들. 그려놓고도 악어가 맞나 싶었는데 아들 눈에는 "아거'로 보이나 봅니다. 착한 아들입니다.

이번에는 최근 아들의 최애 동물 새를 그려봅니다. 갈매기도 아닌 참새도 아닌 비둘기도 아닌 그냥 날개와 부리가 있는 무언가를 그렸는데 아들은 '짹'이라 합니다. 어쩌면 아들 눈에는 아빠가 피카소이자 고갱이자 클림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재 화가 아빠가 잠시 작품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엄마와 함께 오스트리아 박물관에서 만났던 클림트의 키스. 소 좋아했던 그림이었는데 막상 가니 큰 감흥은 아니었습니다. 방문객이 많아서였을까요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요. 작품을 보았에 의의를 두었던 당시의 우리를 회상합니다. 클림트의 키스 같이 아름다웠던 우리. 아 찬란했던 우리여-라고 추억을 회상하기도 전에 아들은 공룡과 악어와 새 그림 위 크레파스를 차게 찌익찌익 그립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아빠의 예술 작품을 훼손하는 걸 보니 아들이 흥미가 떨어졌나 봅니다.

"다. 널 그려봐 주마."

집히는 대로 든 크레스파스의 색깔은 파란색이었습니다. 가 좋아하는 색깔입니다. 아들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귀 얼굴을 그립니다. 숱 많은 아기 머리카락은 빽빽하게 채우고 라인이 잡힌 눈썹과 맑고 처진 순한 눈, 도톰한 콧방울과 톡 하고 튀어나온 입술을 그립니다. 짧은 몸과 팔다리는 쓰윽쓰윽-. 마지막으로는 어린이집 가는 대견한 아들의 필수어린이집 가방을 메어 줍니다. 어린이집 가방은 색깔을 바꾸어 연두색으로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완성입니다.

"아들아 완성이다. 이거 OO."

티 아거 짹짹이를 외쳤던 아들이 갑자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자기를 안 닮았나 봅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상합니다. 아들 실물이 훨씬 괜찮은데 말이죠. 괜찮습니다. 아들은 처음 그렸다는 게 뿌듯합니다. 언젠가 아들도  그려줄까요. 아들의 눈에 비친 모습이 어떨지 아들의 첫 그림이 궁금해집니다.

P.S 이앓이가 시작, 아데노바이러스에 걸려 힘들어하는 . 얼른 건강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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