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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Apr 18. 2023

응급실에 다녀왔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갈 거 같다는 생각이 현실로

아기를 키우며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 '언젠가 한 번은 응급실에 가겠지.' 막연했던 응급실을 방문한 건 갑작스럽게였습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 달고 사는 감기. 이 주가 넘도록 감기가 붙어있을 때였습니다. 아기 감기약을 약병에 담는 사이 안방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큰 울음이 터졌습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키가 자란 아기. 자신감이 붙었는지 스스로 범퍼침대를 넘어보려 했고 자신감 대비 불안정한 발놀림의 아기는 균형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추락을 했습니다. 떨어짐과 동시에 자지러지는 울음이 들렸습니다. 어떻게 떨어졌는지를 모르니 그저 안아주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습니다. 조그만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조그만 머리에는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한참을 달래자 어는 정도 울음이 잦아들었습니다. 땀범벅이 된 머리에 손부채질을 해주고 땀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땀을 닦던 손가락에 뭔가가 툭 하고 걸렸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이마를 살펴봅니다. 왼쪽 이마에 탁구공만 한 혹이 생겼습니다. 부풀어 오른 이마가 새빨갛게 변했습니다. 

렇게 갑작스레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아기도 많이 놀랬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 병동이 있는 대학병원에 가는 동안 아기는 잠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조금은 가라앉았습니다. 잠에서 깬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대기 의자를 왔다 갔다 하다가 안아달라고도 일어나라고도 하며 천진난만함을 보입니다.

응급실은 대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대기를 하다 혈압을 재었고 다시 대기를 하다가 상태 확인을 하였고 또다시 대기를 하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 것이 무서웠는지 아기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사진상으로 다행히 골절 현상은 없었습니다. 혹시나 아기가 이상 현상을 보이진 않는지 며칠간 잘 관찰을 하라는 진찰을 끝으로 첫 응급실 방문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걱정 대비 치료약없이 응급실 진찰나버렸습니다. 수납을 하고 나서야 놀람이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입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기가 범퍼침대에 오르지 못하게 조정을 니다. 탁자에도 오르지 못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아기는 슬슬 눈치를 보며 위험한 행동을 즐기려 합니다)


생후 14개월 아기. 한 눈을 팔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도 일이 벌어집니다. 아기가 더 커서 24개월이 된다면 마음이 놓일까요? 34개월이 된다면? 44개월이 된다면? 아니 훌쩍 커서 14살이 된다면? 그래도 역시나 마음이 놓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걱정하는 것이 자식을 가진 엄마아빠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는 경험할 것들이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아기가 커가면서 몰랐던 것들을 하나 둘 경험합니다.  언젠가는 가게 될 것 같은 응급실을 경험한 것처럼 말이죠. 응급실의 풍경은 생각보다 많이 긴박하진 않았습니다. 대기를 하면서 보았던 풍경은 읊어보자면, 119와 동반한 어르신 분들이 많이 오신다는 정도. 기력이 조금 쇠하신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천진난만한 아기를 빨리 봐줬으면 하지만 대기가 꽤 길다는 느낌. 그리고 다시는 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기도 정도습니다.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경험들. 그 미지의 경험은 행복한 기운이 가득 찬 무언가였으면 좋겠습니다. 아기도 엄마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런 밝은 무언가. LED등 같은 쨍함까진 아닌, 구름이 낀 밤하늘 보름달 같은 탁한 빛은 아닌, 한낮의 바다에 반사되어 비치는 반짝반짝한 정도의 밝음. 그 정도의 찰랑찰랑한 기운이면 딱 좋겠습니다.


P.S. 아기 이마에 든 멍이 얼른 사라지기를. 감기 또한 얼른 달아나기를 바랍니다.


아기 발에 채웠던 응급실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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