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일이 편해보인다고?
얼마 전에 우리 가게에 잠시 발을 끊었던 고등학생이 시험기간이었는지 오랜만에 찾아왔다.
이전에 세나클 시절(리뉴얼 전)에 어린 노무 자식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하도 진상짓을 부리길래
서비스 마인드고 뭐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로 대하자. 발 길을 뚝 끊었던 녀석들 중 하나인데,
미운 정도 정이라고,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했고 그냥 인사치레로 ' 몇 학년이냐, 공부는 잘하고 있냐 등'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가던 와중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형, 저도 나중에 그냥 카페나 차리고 싶어요"
"왜요?"
"편해 보이잖아요~"
"..."
물론,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냥 눈앞에 수능 공부가 힘든거겠지. 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학생들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자주 들리는 우스개 소리 중 하나가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 카페 창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점심시간에 직장동료와 함께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그냥 돈 좀 모이면 일 때려치우고 카페나 차려야겠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카페 창업은 흔해 빠진 이야깃거리의 소재가 되었다. 물론, 소규모의 자본으로도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헛된 망상까지는 아니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말 보이지 않는 크나큰 오류가 있다.
옆에 있는 직장동료가 저런 말을 지껄이는 데는 '편해 보여서' 가 거의 99.5% 정답일 거라고 확신한다. 도대체 얼마나 편하게 살고 싶어서 저런 말을 지껄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담컨데, 저런 사람들이 우리 가게 와서 주말에 혼자 한두 시간 정도만 일해도 곧 토할 거 같은 몰골을 하고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는 밑도 끝도 없는 자기 확신만큼 만만한 게 없다. 물론 개인 카페라면, 자기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기 시간은 주어진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 오는 날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소설책에 몰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길어야 30분 정도.
혼자서 일하는 개인 카페에서 30분 정도의 이상의 개인적 여유시간이 주어진다는 이야기는 곧, 손님이 가게를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편해 보이기 때문에 시작한 사업이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상황에서 내 편함만을 추구한다고? 진짜 웃기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뽑아놓고 소설책만 주구장창 읽어봐야 머릿속에 글이 들어올까? 난방비며 전기세며 어디론가 돈 새는 소리만 들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결국. 카페도 음식점이다. 아무리 요즘처럼 문화공간이라며 좋게 포장해봐야. 일단은 음료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게 우선 목적이란 소리다. 문화 공간이란 듣기 좋은 허울은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음료가 팔려서 어느 정도 매출이 잡히거나 자금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에서의 동화 같은 이야기일 뿐.
요즘은 두뇌 회전 좋고 미적 감각 좀 있으며, 자기 사업을 하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카페 공간을 알아보는 일이란다. 그와 동시에 요즘에는 누가 봐도 전시회를 방불케 할 정도의 자극적인 컨셉인 카페들이 수두룩하게 보인다.(얼마 전에는 일본 의류 브랜드 언더커버의 쇼룸을 연상케 하는 카페도 보았다.) 그런 작가적 성향이 짙은 카페들을 두고 젊은 친구들은 '힙한 카페' 혹은 '트렌디한 카페'라고 부르는데, 이제 그런 카페들은 도심인 서울을 넘어서 지역을 불문하고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이 생소한 지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인스타로 그 지역의 핫한 카페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만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카페가 차지하는 문화적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더 재밌는 사실은 그런 발 디딜 틈 없는 핫한 카페를 방문한 사람들은 정신없는 주방의 상황을 힐끗 보고는 '아 카페나 차리고 싶다'라는 말을 아낀다는 것이다. 그저 멀뚱멀뚱 사진이나 찍고 바라볼 뿐.
나로 예를 들면, 혼자서 3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페 사장이면서, 직원, 디자이너.
여기서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게 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서서히 매출로 나타난다.
사장의 역할은 전체적인 관리다. 관리자의 눈으로 가게의 전체적인 상황을 관망해야 한다. 매출이며, 신메뉴, 서비스의 품질, 지속 가능한 컨셉 등 등. 또 하나는 직원이다. 음료 제조와 고객 응대, 설거지와 청소 등 등.
마지막으로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시즌별로 컨셉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어 준다던가 신메뉴에 대한 팝업, 계절에 따른 컵의 디자인 등 등. 여기서 '등 등'이라는 두 글자에 담긴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일들이 비로소 하나로서 어우러질 때. 서서히 매출 상승의 효과로 나타나고,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언제까지고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계속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카페를 시작한 것을 후회하냐고?
그거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O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편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고, 정말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다. 커피에 대해서는 문외한으로 시작을 했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거다. 그리고 남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디자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끊임없이 관심을 갖아오고 공부해왔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내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겁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생각에 공감을 해주고 함께 좋아해 주는 것을 보면 기쁨은 더더욱 배가 된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내 생활까지 영위할 수 있는 것만큼 보람되는 일이 없다.(비록 큰돈은 아닐지언정.)
자 이제는 생각해보자. 당신이 카페 창업을 꿈꾸고 있다면, 당신은 나처럼 1인 3역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절대로 무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편안함을 거부하고, 하루 12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면서 매출을 올릴 각오가 되어있는가. 이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카페 창업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당신 각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성공한 카페 사장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내가 이 과정에서 느끼고 있는 더더욱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다.
내가 정말 편하게 살고 싶다면, 역설적으로도 편함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편함을 추구할수록, 내 삶은 편함에서 달아날지도 모른다.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 - 소크라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