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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보이 Aug 31. 2018

고민하지 말고, 허슬 하세요.

허슬, 멈추지 않는 추진력의 비밀.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서점에 가는 일이다. 커피를 내리는 직업 특성상, 다이나믹하기 보다도 어느 정도 틀에 박힌 일상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책에 파묻혀서라도 잠들어가는 의식을 깨워야만 한다는 소명의식이 생겼다.


내가 사는 부천에는 '경인문고'라는 중형 서점이 있는데, 종로의 교보문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도서들은 다 입고되어 있어 꽤나 만족하고 다니고 있다. 보통 한번 가면 한 시간 정도는 시간을 보내다 오는데 항상 가장 먼저 들리는 코너가 '자기계발'코너이다.

한때는 '자기계발서'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기피하던 때도 있었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작아지는 의욕과 용기를 다지기에는 이만한 영양제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끊임없이 구입을 하고 있다.

천천히 코너를 둘러보던 중에 눈에 띄는 주황색 표지에 두꺼운 고딕체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 있었으니, 얼마 전에 어느 인터넷 리뷰에서 눈여겨보았던 '허슬'이라는 책이었다.

허슬이라는 왠지 모르게 헝그리 정신을 떠올리는 듯한 매혹적인 단어에 시간을 투자해보기로 했다.



무엇이 허슬인 걸까?


목표를 향한 결단력 있는 움직임.
간접적으로 그 움직임 자체가 행운을 창조하고 숨어 있던 기회를 드러내고
우리의 삶을 더 많은 돈과 의미, 추진력으로 충전시키는 움직임


  위에 단락에서 공통된 단어가 보이는가? 그렇다 바로 '움직임'이라는 단어다.

미리 말하자면, 서론부터 결론까지의 궁극적인 이야기는 '계획만 세우지 말고 움직여라'이다.

움직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저자들은 온갖 예시를 다 풀어놓았다. 아마 삶에 절실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움직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예를 들면 여러 자기계발서에 자주 나타나는 예시중 하나가 '헬스클럽 등록'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 역시도 3개월 동안 헬스장만 끊어놓고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현재 2주가 넘도록 가지 않고 있다.

가려고 '움직이기만'하면 될 뿐인데, 도통 그게 마음에 내키질 않는다. 헬스장만 가려면 왠지 발목에 밧줄을 꽁꽁 묶인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지금에 상황에서야 말로 내게 필요한 건 '허슬'이다. 일단 본문에서 이야기한 대로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공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자주 타석에 나서야 한다. 일단 타석에 서야 안타를 치든 홈런을 치든, 스트라이커 아웃을 당하든 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운동을 미룰 수 없어서 어제 일이 끝나자마자 근처 백화점에 있는 나이키 매장으로 갔다. 운동용 티셔츠 두 벌과 반바지를 한 벌 구입한 뒤.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곧장 뛰러 나갔다. '굳이 운동하는데 꼭 그렇게 차려입고 가야 돼?'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예를 들어 검도 도장에서는 굳이 평상복이 아닌 수련복으로 굳이 왜 갈아입고 하겠는가. 어떠한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의식적인 마음가짐이다. 도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일상에서 잠시 벗어서 수련자의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트레이닝복도 마찬가지다. 운동할 때만큼은 일상에서 벗어나 나는 잠시 동안 내 육체의 수련자가 되는 것이다.



허슬과 우회성


정상에 오르기까지 180도로 크게 꺾인 여러 개의 길을 지나야 한다. 그 길을 가다 보면 가끔은 정상에서 뒤로 물러나는 듯하고, 어떨 때는 밑으로 내려가는 듯하지만, 결국 그 길은 정상으로 이어져 있다.


돌이켜보면 20대 초반 삼수생이 되던 시절부터, 터닝포인트의 일본 유학생활을 포함해 개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현재까지 내 나름대로의 '허슬 이야기'가 있다. 

특히나 20대 후반 유학생 시절에는 주변 환경의 덕에 예민해져서 일까? 메타인지가 발달해서 꽤나 올바른 방향으로 삶을 잘 이끌어갔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던 옷에 앞으로의 남은 일생을 투자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던 시절,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 그리던 일본 패션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1학년이 끝나갈 즈음이 돼서 난 왜인지 모르게, 또다시 앞으로 진로문제에 대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1년 뒤면 졸업인데, 일단은 남들처럼(일본 사람들) 판매원으로서의 커리어를 밟아야 하는 건가?'


일본이라는 사회 특성상, 모든 일에서 기본기를 중요하시는 점 때문인지 판매원에서 MD까지의 마치 게임에서의 레벨업 같은 절차가 있었고, MD가 되기 위해서는 판매원이 시절을 반드시 몇 년은 거쳐야 했다. 

그러나, 20년이 넘는 모국에서의 생활을 경험해보자면, 한국에서의 판매원의 대우와 사회적인 통념이 얼마나 허접한가를 알 수 있었고, 물론 국경을 넘어 같은 아시아인걸 제외하면 언어와 문화가 확연히 다른 나라였지만, 그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름의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유학생활을 했는데, 판매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 또한 용납이 되지 않았었다. 그것 또한 한국에서의 고정관념의 문제였겠지만.


  때마침 시기 좋게, 어렸을 적부터 동경하던  꿈의 의류 브랜드와 당시 재학 중인 학교와의 티셔츠 디자인 콜라보 콘테스트가 진행중이였다. 브랜드를 동경하는 마음에 '그냥 뭐라도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디자인을 출품했고, 얼떨결에 대상까지 거머쥐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아마 한국인 최초(?)로 시부야점에 내 작품이 디자인된 티셔츠가 판매되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대상의 기쁨도 잠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취업'에 있었다. 상을 거머쥔뒤로 판매원이 아닌, '디자이너'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을 품게 되었다(당시 포트폴리오가 정확히 무엇에 필요한 건지도 이해하지 못하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영광의 1위라는 수상경력을 등에 엎고, 여러 일본 디자인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일본이라는 나라 특유의 성향이 드러나는데, 눈에 보이는 간판을 중요하시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어느 면접에서 던 지 이 친구들은 기본을 가장 중요시했다. 서류나 면접 탈락의 주요 원인으로 디자인에 대한 기본기도 없이, 급히 준비한 허접한 포트폴리오가 크게 한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운이 좋게 최종면접까지 보았던 모자 브랜드에서는 결국 이야기의 끝에 가서, 디자인팀에서 일하기 전에 몇 년은 지방으로 내려가서 모자를 제조해보라는 이야기에 나는 단박에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연속해서 쓰디쓴 패배의 고배를 마시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졸업은 코 앞으로 다가왔고, 적어도 취업이 될 때까지는 타지에서 취준생으로 지내야 할 판이었다.  당시의 절박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으나 딱히 그 상황을 타개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무심코 보고 있던 우리나라 패셔니스타의 인스타 피드에서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를 구인한다는 공고를 걸었고, 평소에도 그의 패션을 눈여겨보고 있던 터라, 디자이너로서 이런 멋진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길로 바로 이력서 양식을 작성하고는 메일로 보냈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시작과 끝.


  일이 이렇게 되니 저 멀리 틈 사이로 작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달아서 내가 한국에서 눈여겨보고 있던 회사들의 디자이너 구인 급구 소식이 여기저기서 올라왔다. 당시 일본 생활에의 여러 가지 일로 지칠 때로 지쳐있어서 인지,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따뜻한 한국이 그리웠고, 그것만으로도 이곳을 떠나 한국에서 일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현재 우리나라 스트리트 브랜드로서 많은 매니아층이 있는 곳에서도 1차 서류가 통과되었고, 면접 날짜까지 잡히게 되었는데,  한순간에 시도했던 많은 일이 갑자기 잘 풀리는 것 처럼 보였다. 아마 이대로라면 취직까지는 문제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던 시기다.


결국, 두 회사를 모두 합격해서 골라서 가야 되는 상황이 생겼다. 나는 후자 쪽을 선택했다. 

20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스트리트 브랜드 업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매니아로서,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자체로도 나에게는 큰 자극제이자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디자이너로서 자리를 잡아나가기를 희망했으나, 본질적인 문제는 입사 뒤에 크게 드러났다. 바로 나의 부족한 디자인적 기본기였다.







  당시에는 레이아웃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디자인적 이해도가 떨어졌으니 사수에게 틈만 나면 욕을 먹었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난 그곳에서 고문관이자 한참 위축된 열등아나 다름없었다.

대학교 수업이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도움이 되던 안되었던, 사 년 혹은 이 년 동안 그 분야만 공부를 해왔던 친구들에 비해서, 고작 반년도 안된 수준의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실무의 레벨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회사도 결국 학교에서처럼 배우면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으니 프로의 세계에서 얼마나 안일한 생각으로 다녔나 싶다.


결국, 입사 10개월 차에서 나는 간접적으로 회사에서 결국엔 내쳐지고 말았다. 본인도 부족한 실력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점과 겹치게 공백기 없이 개인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고 여차저차 1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잘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 여태까지 운이 좋아서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물렸을 뿐. 아직 갈길이 멀다. 농담이 아니라 멀어도 너무 멀다. 매일 기대 반, 두려움 반인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행태인가. 두려워하면서도 내일을 기대하다니.  어찌 되었던, 여러가지의 경험을 뒤로 하고 지금 시점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아 결국, 우회성은 간접적으로 우리가 '꿈길'로 가는 길에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와 당신이 해야 할 일


금전적인 불안감과 부채, 조작된 게임과 사회적 불평등, 여러 가지 슬픈 일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이 돈이 적든 많든, 당신의 가치가 쉽게 대체되거나 없어지지 않는 일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당신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때때로 당신에게 중압감을 주는 고통이기도 하다. 돈은 생기겠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비판을 잠재우고 ' 지금 상태'에서 '될 수 있는 상태'로 계속 나아가도록 의식적으로 심리적 몰입을 하는 것이다.


  사실, 많이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는 무언가 특별할 방법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지금의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상황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며칠 동안 크게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어느 날 손님이 마신 음료를 설거지하면서 '내가 이 비좁은 공간에서 왜 이따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짜증이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조만간 포스팅할 '순간의 힘'에서도 다루겠지만, 순간적인 생각이 이끄는 힘은 강력하다. 그 강력한 힘이 나를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일에 대한 무기력함과 중압감이 나를 짓누르고, 좀 더 나아가 내가 이 일을 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게 까지 질문을 던지는 상황이 오게 되었던 것 같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생각을 그만두고 싶은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 준 것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라는 지속적인 심리적 몰입과 행동력,

특히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냥 생각난 즉시 행동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최소화하는 것뿐.



'오늘의 나'에서 '되고자 하는 나'로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길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이다. 미스터리와 모험은 떨어지지 않은 채 함께 간다. 위로가 될 법한 말이 있다면, 그건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이다. 가장 창의적인 지성들도, 강력한 리더들도,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도 일주일이나 한 달 만에 로마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훌륭한 와인처럼, 숙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하고 심지어는 진부한 이야기지만, 세상은 이런 진부한 것들에 의해 돌아간다.

새로운 것들은 진부함 속에서 꽃 피우게 되고, 그 새로운 것들은 언젠가 또다시 진부해진다.

우리는 이처럼, 마치 돌연변이와도 같은 삶의 연속성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책의 본문에서는 내가 위에서 풀어놓은 굵직한 문단 외에 그에 대한 구체적인 다양한 예시들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처럼 이도 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더라도, 직면한 문제에 대한 당신의 마음가짐 정도는 달리 해줄지도 모른다.

어떤 책이든지 우리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간접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뿐 그 안에 담긴 지혜들을 어떻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화시키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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