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대한 애정으로 탄생한 옷
수많은 여행 스타일 중에서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처럼 살다 오기’를 모토로 로컬 편집숍이나 소품숍, 카페 등을 중심으로 루트를 정하는 편이다. 관광지에는 큰 감흥이 없어서 가는 길에 있다면 슬쩍 눈으로 담고 지나가고 만다. 로컬 스토어에서는 전형적인 관광상품이 아닌 그 지역 특유의 분위기를 새롭게 해석한 제품을 만날 수 있는데 천천히 걷는 것,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만한 여행거리가 없다. 구경하다 보면 식품은 지인들을 위한 선물 욕구가 드는데, 소품이나 의류는 이상하게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의류가 지역만의 감성이 짙게 느껴지는 매력이 있어서 왠지 사 입으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 나도 껴줄 것 같은 기분?
도시의 이미지를 담은 의류로 '아이 러브 뉴욕(I♥NY)'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공항에서 저 티셔츠를 입고 입국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멋진 뉴욕 여행을 즐겼나 본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게 3개의 알파벳과 하트 모양만으로 가능하다니.
이 로고의 시작은 1970년대, 당시 뉴욕은 경제 불황으로 인해 도시 이미지를 반전시킬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때 뉴욕의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내세워 새로운 도시 브랜딩을 기획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아이 러브 뉴욕(I♥NY) 캠페인'이다.
지금까지도 쭉 사용되는 이 로고를 만든 제작자는 떼돈을 벌었을까? 뉴욕 출신 그래픽 디자이너인 '밀턴 글레이저'는 공공 캠페인 목적으로 'I♥NY'을 제작한 것이라며 저작권을 뉴욕시에 무상으로 양도했다고 한다. 그 도시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I♥NY'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진행한 캠페인이라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도시에 대한 애정으로 로컬 크리에이터에 의한, 로컬을 위한 아이템이 꽤 많다.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가 아닌 실제 지역에 거주 중인 크리에이터들이 각 도시마다 특유의 감성을 그래픽으로 담아내 단순히 여행지를 기념하는 관광상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한동안 SNS를 뜨겁게 달구며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이플릭>의 대구 티셔츠와 <신분당씨티클럽>의 굿즈다. 두 아이템은 로컬 하면 꼭 드넓은 평야, 그리고 그곳에서 신선하게 키워 낸 식재료의 등 특정 이미지를 표현하는 게 정석이라는 편견을 뒤집었다. 복합적인 도시의 분위기를 텍스트로 깔끔하게 표현함으로써 ‘로컬’을 요즘 방식으로 힙하게 풀어낸 점이 *일코 하는 느낌을 준달까. 이 도시를 사랑해, 벗! 과하게 티 내고 싶진 않아, 하우에버! 도시 이름을 가슴팍에 박을 거야, 네버러데스! 스트릿 브랜드처럼 보여야 해. 결론적으로 두 아이템 모두 입어 보고 싶은 디자인으로 알 수 없는 매력이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일코 :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로 실제로 덕후지만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것을 말함.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많고, 그만큼 굿즈가 흔한 법. 기념품 하면 단연 제주도를 빼놓을 수 없다. 가는 곳마다 관광상품을 파는 스토어가 즐비하고 있지 않나. 그렇지만 <아일랜드 프로젝트>의 캐주얼은 뻔하지 않다. 'JEJU'라는 글자를 중심으로 한 클래식 라인으로 시작해 더 나아가 친근한 곰돌이 캐릭터를 활용해 제주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 있다. 여행 기념품이 한순간의 기분 내기용으로 사는 게 한계라면,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일상의 영역까지 범위를 넓혀 더 오래도록 제주를 기억하게 한다.
관광지로서의 특징보다는 제주로부터 받은 영감을 담아낸 브랜드 <포터블>이다. 모든 제품은 오롯이 제주를 담아내어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제주도 여행 시 꼭 들려야 하는 장소로 손꼽힌다. 그중 베스트셀러는 티셔츠와 물병이라고 한다. 아이템 자체는 일상적이라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감각적인 디자인, 어디에서나 구할 수 없는 희소성을 지니고 있어 소유할 가치가 충분하다.
<로컬에 의한, 로컬을 위한>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