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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Feb 08. 2016

하나를 타협하는 삶


설날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즐거운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날이 부담이다. 매년 나오는 수 많은 부담스러운 질문들은 온 가족이 모이는 이 즐거운 날마저 괴롭게 만든다. '취직은 했니, 결혼은 했니, 애는 언제 낳니...' 헌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이런 질문들에 당당하게 대답을 하지 못할까.




사람들은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자기 자신의 꿈을 열정적으로 이루고 싶고, 누구보다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고, 때가 되면 떡하니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기도 하며, 그 모든 것을 가지면서도 남들에게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 칼퇴근하면서 돈도 많이 주고 상사마저 천사인 그런 완벽한 직장을 원하며, 엄청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마음은 천사 같고 집안은 훌륭한,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그런 배우자를 열망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다. 시간은 24시간이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러하기에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어떤 하나를 잃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게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지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그러하기에 놓아야지만 얻을 수 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무엇을  얻을지가 아닌 무엇을 놓을지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얻고 싶다는  욕망보다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그나마 인생이 살만한 것은 보통 하나의 큰 것을 타협하면 대부분의 다른 것을 어느 정도는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꼭 우리는 반드시 사회적인 야망을 추구해야 할까? 왜 꼭 결혼을 해야 하며, 왜 모두가 애를 낳아야 할까. 세상에서 우리에게 강요하는 그 많은 가치들 중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진짜 필요한 것을 찾게 되면, 상대적으로 의미가 약한 것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가족을 타협하고 사회적인 야망을 이룬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돈을 추구하며 여유를 잃는다. 어떤 자는 사랑을 추구하며 명예를 포기한다. 이 모든 인생에 맞고 틀림은 없다. 그저 자신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모든 삶에서 얻으려고 내딛는 한 걸음보다 잃기 위한 한 걸음이 백배 천배 더 괴롭고 힘들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항상 선택에 앞서 자기 행동의 달콤한 결과만 상상을 한다. 어떤 가치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에 따르는 포기를 향한 한 걸음을 굳게 내딛을 용기가 있는지를 진솔하게 자신에게 물어보자.


이 하나를 놓을 수 있는 용기, 이게 어쩌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하나를 놓는다는 것은 결국 남이 만든 길이 아닌 자기의 길을 간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당당할 수 있다. 설날에 나오는 그 무시무시한 질문들에 어깨 펴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분들이 원하지 않는 대답이겠지만 말이다.


결국, 타협하지 않기 위한 타협이 필요하다. 하나를 타협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다른 부분에서는 타협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므로 말하고 싶다. 가지려면 놓아라. 행복해지려면 포기해라.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라.


잊지 말자. 우리는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국에는 대부분 하나 이상을 타협하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을 가지려 하는 자는 자연스레 마지막 남은 하나를 타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하나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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