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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May 08. 2016

나홀로 4일 러시아 여행 - Day 4

다시 일상으로.

어제 어떻게 돌아왔지? 중간에 고양이 한마리랑 논 기억은 나는데 나머지는 가물가물하다. 씻고 잤나 그냥 잤나? 그래도 바지는 갈아입은거 보니 씻긴 한거 같다.


오늘은 뭐 급할 것도 없어서 9시가 넘어서 느즈막히 일어난다. 어차피 돈도 없어서 나가지도 못한다. 대신에 착한 동생이 남기고 간 음식이 있으니 아침은 해결이다.


나와서 식당으로 가니 다들 아침이 한창이다. 첫날은 좀 어색하더니 4일째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생각해보니 아침은 밖에서 안 먹고 여기서 사람들과 같이 해먹을걸 그랬나 싶다. 처음에는 다들 좀 멀리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조금만 얘기를 해보면 다들 너무 착하다. 어제 그 한국 여성분들과는 다르다. 쳇. 그냥 모두 영어를 무서워할 뿐이다.


엘레나는 오늘도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나왔다. 거참... 싫은건 아닌데 눈 둘데가 굉장히 애매하다. 약간 사팔로 바라봐야 매너눈이 된다. 그래도 너무나도 착한 엘레나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다.


냉장고로 가서 지선이가 남긴 음식을 들고 온다. 많이도 남겼다. 사과 2개에, 요거트 2개, 그리고 시리얼 반통. 이거 다 못 먹겠는데? 사람들하고 같이 먹자고 권유해보지만 이미 아침을 다 먹었단다. 하긴 9시가 넘었으니... 난 이게 아점인 셈이다. 다음 식사는 기내식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엘레나, 그리고 스텝인 알렉스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어제 뭐했냐고 묻길래 Russky 섬에도 가고 후니꾸뇨르도 가고, 케이블카 비스무리한 것도 타고, 저녁에는 월광주점도 갔다고 하니 바빴겠다며 좋아한다. 아무래도 이 호스텔에는 외국인이 거의 없어서(지금도 나 혼자) 더 신경 써주는 것 같다. 이 기회에 페이스북 친구도 한다. 드디어 여자 번호를 땄다! 유부녀다!

다음 여행으로 혹시라도 여기서 시베리아 횡단을 생각한다고 하니 몇군데를 추천해준다. St. Petersburg는 꼭 가보라고 하고 모스코바까지 올라 갔으면 그 바로 위가 핀란드이니 거기서 귀국하는 것도 괜찮을거라 한다. 들어보니 나쁘지 않다. 헌데 진짜 올 수 있을까? 여행지는 떠날때는 꼭 다시 와야지 하고는 막상 다시 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기 때문이겠지. 그 가까운 제주도도 간다고 하고는 아직도 못 가고 있는거 보면 알 수 있다. 올해는 제주도 꼭 가야지.

지선이와 그 친구들 덕분에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 시리얼을 요구르트에 얹어서 두개를 다 먹어치우고 사과도 한개는 먹고 남은 한개는 기증한다. 시리얼을 묶어놨던 머리끈은 살짝 챙겨둔다. 이거 가져다 주면 그래도 기념품이라고 좋아하려나?

시간이 좀 남았기에 방에서 잠시 쉰다. 1시50분 비행기라 11시반까지 가면 되고, 숙소에서는 10시반쯤 떠나자고 얘기를 해놨다. 잔돈 남은걸 보니 340루비 정도다. 이거 어디다 쓰지? 공항 가서 티셔츠라도 하나 살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어떤 말끔히 챙겨입은 남자분이 시간 됐는데 안가냐고 물어본다. 아 나 혼자 가는게 아니라 같이 가는 사람이 있나보다. 이런, 기다리게 하면 안돼지. 10분만 달라고 하고 씻으러 간다. 씻는거야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래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 말끔히 씻고 나온다. 깨끗하게 씻고, 더러운 옷을 걸쳐 입는다. 어제 입은 속옷과 4일째 입고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는다. 양말도 어제 신은걸 신으려고 보니 왠 흙탕물이 진득하게 묻어 있다. 나 어제 뭐한거니? 가방을 뒤져서 그저께 신은걸 찾는다. 그래도 이게 좀 더 깔끔하군.


눈에 보이는걸 죄다 가방에 쑤셔 넣는다. 그래도 캐비어 통조림 산게 있어서 가방은 부쳐야 하지 싶다. 어차피 짐은 별거 없다. 옷 달랑 하나 가져온거는 입으면 되고, 충전기, 킨들, 리디페이퍼만 알차게 챙기고 나온다.


이제는 이별할 시간이다. 엘레나한테 인사하니 너무 아쉬워하며 안으려고 한다. 나도 아쉽긴 한데... 엘레나... 너 너무 글래머러스해서 안으면 부담스러워... 살짝 어색하게 포옹을 한다. 그리고 같이 사진도 하나 찍는다.


막상 떠나려니 또 울컥한다. 이러는거 보니 이곳도 나에게 의미가 있었나보다. 여행 다니면서 막상 장소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남는건 사람이다. 어떤 한 장소로 여행을 간다기 보다는 사람들 속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나에게는 진짜 여행이다. 미얀마에서 만난 로키와 프랑스 친구 2명이 그러하고, 베트남에서의 노친구가 그러하다. 여기도 생각보다 기억에 많이 남을거 같다.


혹시라도 서울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한다. 진짜 잘 챙겨줄 수 있다. 이미 지난 여행에서 만난 커플이 한팀 와서 3일간 서울을 소개시켜줬었고, 홍콩 처자 한명도 곧 올 예정이다. 세계가 넓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막상 그리 크지 않다. 원하면 만나게 된다.


자, 이제 가볼까? 아까 그 말끔히 챙겨 입은 신사에게 엘레나가 얘기하는걸 보니 남편이었다. 이런, 남편 앞에서 막 안고 그런거지만...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니 상관없겠지. 근데 남편 잘 생겼네. 훈남훈녀 커플이다. 왜 이게 흐뭇하지?

밖으로 나오니 해가 창창하다. 꼭 떠나려면 이러더라. 폭풍을 동반한 비를 내내 맞고 다니다 이제 떠나려고 하니 날씨가 이리 개어버린다. 아쉬워하지말자. 어차피 그 폭풍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는 법이다.

1시간을 타고 공항으로 온다. 차에서 어제 찍은 사진들을 보는데 왠 영상이 하나 있다. 어? 이건 언제 찍은거지? 어제 월광주점에서 마지막 잔을 만드는걸 찍은 영상이다. 혼자 피식 거리며 재생을 해보는데... 왜 마지막에 내 얼굴이 나오는 거지? 취해서 원샷하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좋다고 난리다. 아 맨정신에 못 보겠다. 이건 친구들한테만 보여주고 뒷 부분은 잘라내서 올려야겠다. 그래도 즐거워보여서 다행이다. 이거 나한테 하는 말이지?


공항에 도착하니 남편이 굳이 차에서 내려서 공항까지 배웅을 해준다. 영어를 못하는데도 마음이 느껴진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이번 여행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똑같다. 나쁜 사람이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러시아를 좋아하는 한 남자가 생겼다.

작별을 하고 공항으로 들어온다. 여기 와이파이가 되서 연결을 해보니 엘레나가 오늘 러시아식 전통 팬케이크를 만든다며 사진을 보내준다. 아, 왜 내가 가면 하는거야... 뭐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다음에...

남은 돈을 써버릴 곳을 찾아 둘러본다. 기념품 가게가 있어서 가보니 모두 엄청난 가격이다. 공항이 그렇지 뭐. 거기서 문득 보드카잔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나당 200루비다. 내가 가지고 있는게 345루비인데 혹시 2잔 달라고 하면 안되려나. 2개 들고 가서 최대한 불쌍하고 착한 표정을 지으며 달라고 얘기해본다. 안될 확률이 클거라 여겼는데 의외로 혼쾌히 허락하신다. 이야, 득템했다. 한국에서 친구들 불러서 소주 먹을때 쓰기 딱이다. 이로써 이번 여행에서는 정확하게 200달라를 쓴 셈이다. 비행기표는 약 10만원, 숙박은 약 4만원. 뜬금없는 정보 공유다.

이제 진짜 러시아에서 할 일은 끝이다. 마지막으로 이 여행기를 여기서 올리면 정말 이번 여행은 끝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어땠냐고 친구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줄까? 대도시지만 시골 같은 곳이고, 덥지만 추운 곳이며,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얘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지루했지만 즐거웠다고도 얘기를 해주리라. 나에게 이곳은 묘한 곳이다. 그럼에도 분명 기억에 남을 것은 확실하다.


너무 짧았던 여행이라 갈증이 해소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8월에 한번 다시 가야겠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든 그때 다시 한번 글과 함께 하게 되지 않을까? 여행 동반자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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