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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May 07. 2016

[실시간여행기] 나홀로 4일 러시아 여행 -Day 3

문라이트바

화들짝 놀래서 잠이 깬다. 아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인가?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한국에서도 가끔 이러더니 여기서도 이러네. 잠이나 자자.


다시 일어나니 8시가 넘었다. 오늘은 할일이 많은데 늦게 일어나버렸다. 그래도 보드카가 좋은게 숙취가 전혀 없다. 오늘 하루 더 달려도 되겠군. 이럴때는 술 센 유전자를 주신 부모님(정확하게는 아버지)이 고맙다.


씻고 나오니 벌써 아무도 없다. 비워진 침대도 몇개 보인다. 오늘이 토요일인가? 역시 여행 중에는 시간 감각이 둔해진다. 그런데 토요일이면 사람들이 더 와야 하는거 아냐? 왜 오히려 없어진거지.


이제 삼일째다. 슬슬 익숙해진다. 침대도 익숙하고 스텝들도 익숙하다. 항상 느끼지만 3일째가 되어야 이제 좀 제대로 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거 같다. 어제 아침만 해도 4일이 살짝 길게 느껴지더니 이제는 좀 더 있고 싶어진다. 진짜 다음 여행으로 시베리아 횡단 한번 해볼까? 물론 그렇다면 최소한 러시아어 읽는 법이라도 배워와야겠다. 이곳에서 알파벳을 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오늘은 어제 못했던 일정을 소화하려고 한다. 밖을 보니 화창하지는 않지만 비는 안오는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늘의 미션이다. 첫번째, 읍내 가서 아침 먹기. 두번째, 15번 버스를 타고 옆 동네, 아니 옆의 섬으로 가서 꽤나 유명하다는 대학교를 가본다. 그쪽에서 가능하면 점심을 해결하고 섬을 구경한 후 돌아와서, 세번째, 후니쿠뇨르라는 엘레나가 두번 데려간 전망대를 케이블카 비스무리한걸 타고 올라간다. 네번째, 전망대에서 일몰을 본다. 근데 여기 일몰 시간이 워낙 늦어서 가능할지는... 다섯번째, 어제 집에 오면서 본 문샤인바 옆에 있는 괜찮아보이는 식당에 간다. 마지막으로 문샤인바에서 층이 있는 샷을 한잔 원샷한다! 이렇게 정리하니 패키지 여행 같네...


일단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냥 입는다. 결국 옷 하나로 4일을 버티는구나. 나도 참 대단하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킨들을 챙기고 2만원짜리 샤오미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다. 오늘도 즐거운 날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해보면서.

읍내로 가는 길은 이제 눈 감고도 가겠다. 오늘 아침은 Cafe Lima라는 곳으로 정했다. Trip Advisor에서 눈감고 그냥 찍은 곳 중 하나다. 이 동네는 산으로 되어 있어서 언덕길과 내리막길이 많다. 운동 되고 좋지 뭐.

30분 여를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와서 보니 어제 아침 먹었던 곳 바로 옆이다. 헌데 어제 왔던 곳이 완전 럭셔리한 분위기라면 여기는 좀 더 젊은 느낌이다. 밖에 써 있는 'Baking Like We Like'라는 모토가 마음에 든다. 당당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10시인데 안에 아무도 없다. 들어가서 쭈뼛쭈뼛하며 영어로 물어보니 막 당황하더니 안에서 젊은 여자가 하나 나와서 짧은 영어로 설명 해준다. 그래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게 이리 반가울 줄이야.

추천을 받아서 팬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한다. 여기 좋은 점이 커피가 무한 리필이 된다. 뭐 많이 먹어봤자 2잔이겠지만 이렇게 여유 있게 먹는게 좋다. 앉아 있으니 팬케이크도 가져다준다. 커피 포함 400루비 정도이니 가격 대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와이파이가 안된다. 다른건 문제가 아닌데 버스 타는걸 아침 먹으면서 조사하려고 그냥 나왔는데... 뭐 어찌 되겠지. 덕분에 오늘은 좀 단절된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 싶다.


여기 스텝도 엄청 친절하다. 러시아의 친절은 인도에서 느끼는 친절함과는 다르다.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친절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얼핏 보면 무뚝뚝해보이지만 다들 배려가 있고 챙겨준다. 길을 건널때 확실히 느껴진다. 차들이 항상, 언제나 멈춰준다. 러시아라는 나라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시간도 있겠다 남은 돈을 한번 계산해본다. 지금 남은 현지돈이 5350루비다. 내가 하나 잘못 생각한게 호스텔에서 공항 픽업이 1000루비다. 고로 왕복 2000루비를 빼면 3350루비가 남는다. 애매하네... 점심은 심플하게 1000루비 안에서 해결 가능할거고, 저녁은 1000루비를 무조건 넘기고, 문샤인바에서는 1000루비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50달라를 추가로 환전하자니 너무 남는다. 내일 점심까지 해결하려면 안전하게 50달라를 환전하는게 나을까? 그래봤자 4일 동안 250달라를 쓴거니 사치한 것도 아니다. 아 이렇게 애매하게 남을때가 가장 문제다. 장기여행이라면 확 아끼겠지만 여기서는 추가로 환전하기로 결정한다.

그러고 보면 이 동네는 규모에 비해서 은행이 너무 많다. 좀 심하게 많다. 이 은행들이 다 영업이 될까? 여기가 항구 무역의 중심이라 그런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뭐하나. 영어 한마디 안써있고 영어할줄 아는 스텝 하나 없을텐데.


홍콩 여행 친구가 인도 여행한 사람이라면 봐야 한다며 추천해준 책은 마음에 든다. 이걸 보다보니 또 인도 여행을 다시 가고 싶어진다. 아, 인생은 짧고 갈곳은 많다. 인도는 언젠가 다시 갈 수 있을까.


11시가 되서 일어난다. 고민하다 환전은 다시 안하기로 한다. 환전을 하게 되면 돈을 쓰는거가 목표가 될거 같아서 생각을 바꿨다. 생각해보면 현재 한끼에 만원 이상이 남은거라 사실 부족하지도 않다.


루스키섬을 가려면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지? 인터넷이 안되니 전통 방법으로 알아본다.


"루스키 섬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역시 물어보는게 최고다. 이 여직원 아까부터 친절하더니 바깥으로 나를 데리고 나와서 어디서 타라고 상세히 가르쳐준다. 길 건너편에서 아무 버스나 타도 간단다. 구글 지도에서는 15번만 간다더니 역시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친절했던 여직원에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정거장으로 간다. 이제 저 직원은 동양 훈남을 영원히 추억으로 삼겠지? 라는 망상은 뒤로 날려버린다.

기다리니 15번 버스가 먼저 온다. 결국 15번을 타게 되네. 근데 버스 티켓이 20루비인걸로 아는데 아무도 돈을 안낸다. 내릴때 내는건가? 일단 조용히 있어봐야겠다.


이 버스는 중간계로 가는 버스인가? 앉아 있으니 계속해서 엘프들이 올라탄다. 루스키 섬에 대학교가 있다더니 학생들이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이 중에 아무나 무작위로 선택해서 한국에 모셔가면 바로 모델로 데뷔시킬 수 있을거 같다. 아 러시아... 좋은 곳이다. 근데 여자에 비해 남자들은 좀 아쉽다. 덩치가 너무 크고, 무엇보다 '자라나라 머리머리'가 다들 심하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희망이...? (헛소리...)


요즘 러시아에는 씨스루 패션이 유행인가보다. 다들 속옷을 노출시키고 다닌다. 남사시럽게시리... 이런 패션은 도데체 누가 개발한거야. 고맙게시리.

사람이 꽤 많이 탄다. 내 옆에도 한 처자가 앉지만 나를 향해 적극적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나름 훈남 취급도 받는데... 버스에 외국인은 나 하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호기심으로라도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여완얼인가. 원빈이나 정우성이 왔음 달랐겠지. 니네도 다 똑같애! 쳇.

저 멀리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인다. Trip Advisor에 보니 이 다리가 관광지 1위다. 얼마나 볼게 없으면 다리가 갈만한 곳 1위겠냐. 광안대교가 백배는 아름다워 보인다. 확실히 여기는 관광지는 아니다.


다리를 넘어 대학교에 오는데... 여기 진짜 광활한 자연 가운데 쌩뚱맞게 학교가 달랑 하나 있다. 이거 밥 먹을 곳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좀 더 타고 가볼까? 이 버스는 어디까지 가는걸까. 일단 옆에 등 돌린 여자 민망하지 않게 이 여인 내릴때 따라내려야겠다. 등은 그만 돌리지...

사람들이 내리길래 일단 같이 내린다. 근데 여기 맞나? 학교라고 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냥 길이다. 학생들은 수업에 늦었는지 길을 건너서 쪽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간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한번 가보자. 나도 쪽문을 열고 들어가본다.

들어와서 든 첫번째 생각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여기 왜 온거지? 그냥 덩그러니 건물들만 있는 학교다. 무지하게 넓은 학교인건 알겠는데 여기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하다하다 이런 곳까지 오는구나. 게다가 날씨는 갈수록 흐려진다. 여기서 비라도 오면 진짜 망한다.

학생들만 보이는 곳에서 홀로 돌아다니자니 눈치도 살짝 보인다. 들어와도 되는건 맞겠지? 일단 멀리 바다가 보이길래 한번 그쪽으로 가본다.

이야, 근데 학교라고 하기에는 좀 멋지긴 하다. 바다를 등지고 체육시설이 깔끔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 있었으면 저 트랙을 매일 같이 뛰고 싶겠다.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가, 모든게 큼지막하다. 운동장 큰처로 가보니 분수도 보이고, 가족 단위 일반인도 보이는게 공원처럼 꾸며놓은거 같다.

헌데 그 와중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아 망했다. 여기는 비 피할 곳도 안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 한쪽은 비가 오는데 한쪽은 해가 살짝 나오고 있다. 일단 갈 곳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해를 따라 이동해본다.


그냥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끝까지 온듯하다. 그리고 이곳에 오니 해가 짱짱해서 더울 정도다. 이곳 날씨 정말 괴랄하다. 해변쪽은 정말 잘 꾸며져 있다. 깔끔하게 펼쳐진 해변 산책길에 폭포까지 꾸며놓았다. 여기는 가족단위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아까까지는 비오고 우중충하더니 갑자기 환해져서 적응이 안된다.

해변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쉰다. 파도 소리가 들려오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중간 중간 들려오는 갈매기들의 추임새도 한적한 공간에 포인트를 제공해준다. 마음에 드네 여기...


지난 여행 때 부터 이어폰을 안쓰기 시작하였다. 음악도 잘 안듣게 되었다. 여행 올때 원래는 음악과 책을 항상 먼저 고르곤 했는데 이제는 책만 고른다. 음악은 자연이 주는 음악이 가장 아름답다는 깨달음이 생긴 이후다. 어디서든 눈을 감고 자세히 들어보면 자연이 선사해주는 조화로운 콘서트가 들려온다.

잠시 앉아서 햇살을 맞으며 책을 본다. 이 한적함과 평온함이 좋다. 이런 기분 때문에 늘 여행을 오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사원 하나에 짱 박혀서 오전 내내 책을 봤던 게 기억난다. 앙크로왓보다 그 한적함이 좋았었다. 사실 동네 뒤에 여의도 한강공원만 가도 느낄 수 있는건데 참 아이러니하다.

한시간 정도 봤나? 갑자기 쌩뚱맞게 비가 오기 시작한다. 아 정말 날씨 괴랄하네. 종 잡을 수가 없다. 이러다 말지 싶긴 한데 그래도 이동해본다. 1시가 넘었으니 가볍게 점심을 떼울 때가 되기도 했다. 조금 걸어가니 멀리서 코카콜라가 세운듯한 간이 식당이 보인다. 어차피 아침 먹은 배도 안 꺼졌고 딱 적당해보인다.

가서 얼마냐고 영어로 물어보니 카운터에 있던 젊은 여종업원이 갑자기 막 웃으며 도망간다. 여기는 한국에서보다 영어를 더 무서워한다. 그때 뒤에 있던 남종업원이 영어로 대답해준다. 그래도 곳곳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둘 숨어 있어서 다행이다.


200루비에 물과 케밥 비스무리한걸 산다. 미리 만들어놓은거니 맛이야 그냥 그렇지만 한끼 식사로 딱 적당하다. 역시 환전 안하기 잘했다. 내 성격상 100루비가 넘는 식사는 잘 안하게 될거다.

먹고 있으니 또 햇살이 비친다. 참 날씨하고는... 이래서 우산을 안 파나보다. 비가 막 오지도 않거니와 보통 올때는 강풍을 동반해서 우산이 어차피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근데 하도 얘기해서 그렇긴 하지만 진짜 여기는 왠 바비 인형들이 이리 많이 걸어 다니는지... 이제 이상형 물어보면 러시아 여자라고 해야겠다. 여기도 이런데 우크라이나는 어쩔려나. 다음에 한번 가볼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분다. 자리를 접고 일어난다. 이제 슬슬 해변가를 좀 걸어보지만 강풍이 심하다. 숨 쉬기가 힘들 정도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 생각해보니 오늘 주말장이 선다고 했으니 한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가는 길을 찾는 것도 일이다. 오늘 여기 대학교를 돌아다니고 하나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안에는 이렇게 깔끔하게 잘해놓고는 정문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온갖 고풍 있게 해놨을텐데 이것도 문화의 차이이겠지? 덕분에 나가는 길도 한참 해메서 찾는다.


들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쪽문으로 나가자마자 운 좋게 15번 버스가 바로 와서 올라탄다.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올때는 편하게 앉아서 왔는데 갈때는 서서 낑겨서 온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


왕복 40루비, 약 600원으로 관광 잘했다. 원래는 시내까지 바로 갈려고 했는데 갑자기 안내 방송에서 후니꾸뇨르라고 말이 나온다. 어라? 원래 여기는 케이블카 같은거 타고 오는게 목표였는데 그냥 내려버린다. 일몰을 보려고 했지만 오늘 날씨를 보아하니 일몰 보기는 어차피 글렀겠다.


어쩌다 보니 3번째 오는 정상이지만 혼자 온건 처음이다보니 처음 온거 같다. 확실히 누구와 같이 오면 제대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기가 힘들다. 이렇게 혼자 와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어야 제대로 온 느낌이다.

이 도시는 그런데 뭐하는 곳일까? 항구 같기도 한데 군함도 잔뜩 보이는거 보면 전략적 요충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긴 남쪽에서 올라올때는 여기를 거치게 되는걸까? 왠지 러일 전쟁때 슬픈 사연이 있을거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여기도 투어 가이드가 있구나... 한국말이 들려서 보니 중년 남자분 둘이서 가이드와 올라와서 설명을 듣고 있다. 잠시 설명을 듣더니 사진 하나 찍고 내려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이드를 데리고 갈 곳이 어디일까? 여긴 그 정도의 관광지는 아닌거 같은데... 3일째가 되니 이 도시에 대한 나만의 평가가 어느정도 나온다. 나는나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베스트 여행지는 당연히 아니지만 여행으로 한번 들릴만한 곳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누군가한테 추천은 못하겠다. 사실 하나 하나 보면 볼만한 것도 정말 없고, 먹을 것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냥 분위기가 좋다고나 할까.


바로 내려가기 싫어서 잠시 앉아서 책을 본다. 그런데 추워서 책 보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잠시 보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내려가는 길에는 20명 정도의 한국 관광객을 만난다. 가이드와 함께 하는 투어에 그다지 부정적인건 아니긴 한데 여기는 진짜 그럴만한 곳이 아닌데...

근데 저 케이블카는 움직이는걸까? 사람도 아무도 없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작동 안하는거 같지만 구경이라도 할겸 한번 가본다. 문은 열려 있다. 관광 상품으로라도 유지하려고 하나보다. 슬쩍 안에를 들어가보니 한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는 전통차가 하나 있다. 어? 근데 안에 사람이 있네?


혹시나 싶어서 가까이 가서 물어보니 작동한단다. 오, 횡재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1루비다. 러시아 사람들은 왜 딱 맞아떨어지게 가격을 책정 안하고 1의 자리를 자꾸 유지하는걸까. 1루비가 15원 정도이니 이거 은근히 귀찮은 잔돈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난 이미 잔돈이 있어서 그걸로 해결한다.


나 혼자 앉아 있는데 사람이 안온다. 보아하니 사람이 채워져야 움직이는거 같은데 한참을 이러고 있어야 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뭐 언젠가는 오겠지 하며 편하게 생각한다. 그때 바로 세명이 차에 탑승하고 운 좋게 바로 출발한다. 역시 나는 생각보다 운이 좋다.

출발하고 내려오는데 한 5분 걸린거 같다. 사실 전동차를 타고 움직일 거리가 아니긴 한데 언덕이다 보니 일반 길은 구비구비 되어 있어서 이게 은근히 효과적인가보다. 내려와보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지도를 펴고 현재 위치를 보니... 왠지 저 위에 있을때보다 시내 중심에서 더 멀어진 느낌이다. 뭐 어차피 급할 것도 없고, 천천히 걸어가면 되지.


대충 방향을 잡고 걸어가본다. 이쪽 길은 처음인데 의외로 고풍스러운 길이 러시아를 표현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길의 풍경을 마음에, 또 카메라에 담으면서 산책하듯이 내려온다. 사람 구경도 좀 하면서...

그렇게 1시간을 걸어온다. 이거 생각보다 멀다. 사실 목적지가 없어서 더 멀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걸으면서 지도를 보니 어제의 문샤인바로 가는 방향이다. 그쪽이 해변 번화가이니 그냥 걸로 가야겠다. 근데 슬슬 다리가 아파온다.


해변으로 오니 4시 쯤이다. 이제 뭐하지.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르고... 카페를 가기도 애매하다. 오늘은 점심도 대충 때웠으니 저녁을 한 5시쯤 일찍 먹고 바를 가든가 일찍 귀가하든가 할까 싶다. 잠시 고민하다 첫날 맥주 한잔 먹었던 노상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커피는 아침에 많이 마셨기에 50루비 짜리 차를 하나 사서 자리 잡고 키보드를 핀다. 그러고 있으니 그때 고양이가 다시 다가온다. 이놈 내가 잘 만져주는건 알아가지고. 아무래도 피부병이 있어서 좀 간지러워 하는 거 같다. 콧잔등을 살짝 만져준다. 냥이들 이러면 아주 좋아하지.

조금 쌀쌀하네... 어쩐지 사람이 별로 없더라. 블라보스토크는 덥고 춥다. 중간이 없다. 첫날 여기 앉았을때는 더워서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추워서 패팅을 입어도 쌀쌀하다. 해변 도시들이 늘 그렇지만 날씨가 정말 독특하다.


여기 앉아 있으니 한국 관광객도 몇명 보인다. 물론 전부 커플이다. 젠장. 나도 한때 커플이었음을 잊지 말자. 안외롭다... 안외롭다... 속으로 주문을 외워본다. 그런다고 안외로우면 그게 인간이니. 쯧. 헛소리 그만하고 책이나 봐야겠다. 문제는 책마저도 인도에서 만난 커플의 얘기라는거. 하필 고른 책도 이 모양이냐...

추워서 햇살이 들어오는 계단으로 자리를 옮긴다. 근데 여기도 추운건 매한가지구나. 오늘 감기 안걸릴지 걱정이다. 바닷바람을 너무 직방으로 많이 맞았다. 그래도 패딩 하나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5시가 넘어서니 배도 고프고 추워서 안되겠다. 일단 밥을 먹자.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사람이 많이 있어서 좋아보였던 곳을 찾아본다. 근데 취했을때 봐서 그런지, 아님 아직 해가 떠 있어서 그런지 잘 못 찾겠다. 왔다 갔다 하며 기웃기웃 거려본다. 사실 꼭 거길 가야 하는건 아닌데, 뭔가 가고 싶어졌다. 그냥 나름의 인연을 느꼈다고나 할까.

긴가민가하지만 그래도 비슷해 보이는 곳에 들어간다. 맞는거 같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손님은 한 테이블 밖에 없다. 일단 메뉴를 달라고 하고 자리에 앉는다. 근데 참 퉁명스럽다. 메뉴를 보니 저렴한게 관광객 상대가 아니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1000루비를 저녁으로 쓸려고 했는데 가장 비싼게 300루비 정도다. 이러면 돈이 너무 많이 남겠는데. 뭐 2차 가서 비싼거 먹으면 되지. 혼자서 2차도 가고, 그러고 보면 나도 참 혼자서도 잘 논다.


맥주를 먼저 주는데 이거 뭐 잔도 없이 떡하니 그냥 준다. 병따개도 없다. 그냥 알아서 처먹으라는건지... 식사 기준으로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좀 아쉽다. 물론 혼자서도 잘 노는 나기에 포크로 가볍게 병을 따고 물잔인지 모를 나무잔에 따라서 한잔 마신다.

러시아 병맥주는 처음 먹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근데 벽에 왜 목을 매단 여자 인형을 걸어놓은걸까? 여기 참 독특하다.

기다리니 식사가 나오는데... 이거 뭐야. 디저트야? 주먹만한 냄비에 야채와 고기가 담겨있다. 내가 잘못 시킨거면 얘기를 해줘야 할거 아닙니까. 종업원 둘은 음식을 던져놓고 한명은 남자친구한테인지 전화를 하고 하나는 뭔 드라마인지를 소기 크게 틀어놓고 보고 있다. 이 인간들...


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으니 내가 참자. 근데 이거 진짜 뭐지. 빵이나 난 같은거와 같이 먹는건가. 여기서 더 시킬까 하다 그냥 차라리 간단히 먹고 문샤인 가서 식사를 주문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꾼다. 나 오늘 3000루비 쓸 수 있는 남자야!

어라? 욕을 너무 빨리했나? 음식을 하나 더 가져온다. 당황했다. 300루비짜리 하나 주문했는데. 세트메뉴인가? 맛도 은근 괜찮다. 만두속을 따로 구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님 패티의 느낌이라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어제 손님이 꽉 찼던거 보면 이유가 있겠지. 홀에서 2명이 일하고 둘다 엄청 불친절한 것도 분명 이유가 있겠지. 밥 먹는 와중에도 손님이 계속 들어온다. 생각보다 괜찮네? 맥주 하나 더 마셔야 하나?

아 여기 미스테리다. 분명히 병맥주를 가리키며 하나 더 달라고 했는데 잔으로 맥주가 하나 왔다. 따라서 준걸까? 이거 왠지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혹시 나무잔에 따라마시는게 좀 안쓰러워보였나? 하긴 내가 안쓰러워보이는 대회 나가면 1등할만하지. 뭐 맛만 있으면 됐지. 그래도 나갈때 계산서는 똑바로 한번 봐야겠지 싶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여행을 와도 여행 온 느낌이 아닌거 같다. 그냥 살짝 동네에서 벗어난 느낌? 경계도 그다지 안하게 되고 뭔가를 억지로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데로 둔다고나 할까. 여행은 정말 일상처럼 다니게 된거 같다. 이제 남은건 일상을 정말 여행처럼 다니는거겠지?


그러고 보면 얘네도 날 보면 신기할거 같다. 갑자기 왠 동양 남자가 거지 같은 옷 하나 입고 나타나서, 맥주와 밥을 먹으면서 가끔 키보드를 친다. 거기다 술을 마시며 책도 보고, 또 그러다 키보드를 치고. 얘기하다보니 진짜 미친놈 같네.


내가 술이 취하는건 확실히 로그 곡선 같다. 처음에 금방 취한 후에 그 상태로 오래 간다. 맥주 두잔을 마셨을 뿐인데 기분이 많이 업되어 있다. 오늘은 월광주점에 가면 샷부터 한잔 마시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괜찮겠지?


여행이 끝나가는 시점이 되니 다음 여행을 벌써 기대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사실 전초전의 느낌이 강하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퍼스트 어벤저스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8월에는 최소 1주, 길게는 2주까지 일단 갈 생각이다. 원래는 아프리카를 갈려고 했는데 갑자기 시베리아 횡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서, 여러 곳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모스코바에서 귀국하는 여정이다. 16일 코스로는 충분하지 싶고, 9일 코스로는 좀 어려워보인다. 우리 회사는 여름과 겨울에 회사 자체가 일주일 문 닫기에 거기에 가능한 생각이다. 아니면 예전부터 가고 싶어했던 몽골을 가버릴까? 거긴 무조건 차를 빌려야 할텐데... 몽골도 언젠가는 꼭 가고 싶은 곳이긴 하다.

7시가 되서 식당을 나선다. 아직도 해는 짱짱하다. 여기 도데체 해가 언제 지는걸까? 북부 지방이라 그런지 일몰 시간이 굉장히 늦다. 그러고 보니 여행 와서 일출과 일몰을 안 본 곳은 여기가 처음 같기도 하다.


나와서 잠시 맴돌다 문샤인바로 향한다. 아직 해가 짱짱한데 들어가려니 좀 그렇긴 하지만 마지막 날인데 어떠랴. 이 시간에도 사람은 의외로 좀 있다. 자연스레 바 정중앙에 앉는데, 어제 그 친구가 없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있길래 살짝 물어보지만 영어를 아무도 못한다. 이런, 꼬이네.


대머리에 수염 가득한 친구를 몸으로 표현하고 혹시 없냐고 물어본다. 있다고 하더니 안에서 나온다. 아 다행이다. 마지막 날인데 망칠뻔했다. 저 밝은 대머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엄청 반갑다. 근데 자세히 보니 이 친구도 '자라나라 머리머리'의 희생양이구나. 러시아 남자들은 거의가 머리 유전자가 안좋아보인다.


반갑게 악수 및 주먹 범핑을 하고 첫잔은 어제 옆자리에서 먹어서 부러웠던 샷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첫잔이니 강하지 않게 만들어준단다. 아직 해도 안졌는데 너무 취하면 안된다고 걱정(?)해준다. 숫가락을 뒤집어서 얹고 하나씩 조심히 따라서 층을 만들고 가득 채운 후 맨 위에 레몬 한 줄기를 얹어준다. 이건 어떻게 먹는거지? 물어보니 레몬까지 한입에 넣으란다.

그래, 자고로 첫잔은 원샷이지. 한국인의 기상을 보여주자. 가볍게 한입에 털어넣는다. 근데 이거 샷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한데? 너무 배려해준거 아니야? 나 오늘 취하고 싶다고!


물어보니 역시 약하게 탔단다. 그래, 밤은 기니까. 미리 얘기를 해준다. 나 2000루비 정도 있으니 그 이상 먹으면 알아서 잘라달라고 말이다. 어차피 내일은 비행기에서 기내식 먹으면 되니 여기서 남은 돈 다 써도 된다. 번잡한 곳에서 쌔끈한 사람들 사이에서 꾸지르르하게 앉아서 나만의 파티를 할거다.


두번째 잔은 좀 큰잔으로 달라고 부탁한다. 역시 메뉴는 보지도 않는다. 우리 수염 아저씨 알아서 만들어준다. 오이를 서너개 넣더니 뭔가를 넣고, 잠시 또 고민하다 뭔가를 넣는다. 연금술 같은 느낌이다. 이게 바텐더의 매력인거 같다. 어제 느꼈던 매력이고 오늘 다시 온 이유다.

술에서 오이의 맛이 난다.  오이 술맛이 이상할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맛있다. 확실히 이 친구가 만드는 칵테일은 다 맛있다.


알렉시라는 이 친구는 가장 처음 해외로 간게 서울이란다. 난 원래 칵테일은 여자를 위한 술이라 믿었는데 너 때문에 바꼈다 했더니 크게 웃으면서 한국의 버뮤다 트라이앵글을 가보라고 한다. 한번 가볼까? 이렇게 내 입맛에 맞는 술을 만들어주는 곳이라면 한국에서도 자주 가고 싶을 것 같다.

한국의 술문화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준다. 어른이 마시면 마셔야 되는 문화와, 회식 문화. 회식이 어찌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 중에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 못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이 끝나면 같이 한잔하러 가는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이게 외국인들의 눈에는 그리 이상해보이나보다.


얘기하다 보니 오이 칵테일도 다 마셨다. 이제 3번째 잔이다. 역시 마음대로 만들어달라고 한다. 알렉시는 토요일이 싫단다. 금요일에 만취한 사람들이 토요일에 다시 한번 와서 깽판 부리는 경우가 많단다. 하긴 나도 주말에는 술을 좀 마시는 편이니 이해한다. 여튼 그래서 취한 사람들이 오기 전에 작품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단다.


사과를 편 썰더니 거기에 시나몬 가루를 입히가 토치를 한다. 여러가지 술을 섞은 오렌지 느낌의 칵테일을 준비하고 사과를 거기에 꽂는다. 얘도 보드카 베이스일려나. 일단 맛은 좋다. 역시나.

여기도 이틀째 왔더니 더 이상 쭈그리가 아니다. 바텐더와는 완전 친숙해졌고 옆에 앉은 러시아 여인과도 대화를 나눈다. 문제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거.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영어다.

여기와서 한국 사람들을 거의 못 봤다고 하니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하는 와중에 한국 여자 3명이 들어온다. 아... 또 부담되네. 얘기 걸기도 애매하고 안걸기도 애매한 상황. 회사 후배들의 '힘내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헌팅 한번 못해봤다. 말 거는건 정말 쉽지 않다. 글쎄, 정말 취하면 가능하려나.

8시 반이 되니 해가 진다. 그리고 나도 이제 슬슬 취해간다. 그래도 이틀째 오니 바의 분위기를 알거 같다. 그냥 말을 거는거다. 너 인간? 나 인간. 그리고 x나게 말 거는거다. 이해는 하는데 나는 못 그러겠다. 하하하. 인간이 글러먹었다. 그래도 뭔가 신난다.


화장실 갔다오는 길에 슬쩍 말을 걸어본다. 그래! 취했으니까 해보는거지!


"저기... 한국 분들이시지요?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서..."


"아 네...."


"아 저는 그럼 제 자리로...."


알렉시. 독한거 하나 만들어줘! 내가 헌팅이 안되는 이유가 있었다. 뭐 돌려 말하리. 얼굴이 안되는거지. 용기를 가지라고 누가 말을 했던가. 박명수식 명언 하나 해볼까? 미녀는 잘생긴놈이 갖는거다. 백번 찍으면 네가 무너진다. 경훈이는 헌팅하면 안된다.

독한거 후딱 먹어치운다. 옆에 남자 하나랑 여자 하나가 있다. 둘다 러시아인. 러시아 여자의 손에 큼지막한 반지가 하나 껴 있다. 혹시 부부...?라고 물어본다. 아니 뭔가 내 자리 옆을 밀고 들어왔거든.

여자가 답한다. 오늘 처음 봤단다. 뭐야 이 인간. 진심 빵 터진다. 저 반지는 뭐며, 왜 내 옆자리를 끼고 들어온거니. 그래도 이 여자 영어를 좀 한다. 다행이라고나 할까. 헌데 이분 떠난다. 아 이러면 또 썰렁해질텐데. 바라는게 이렇구나. 여자분이 하나 있으면 남자들끼리 있으면 쭈그리 되는...


또 한잔 시킨다. 이번엔 샷을 하나 달라고 한다. 뭔가 묘한걸 하나로 섞는다. 그래 원샷 한번 해야지. 쭉 들이킨다. 야 이거 묘한 맛인데? 마음에 든다. 아 이놈이 탄 술 마음에 안드는게 하나도 없다. 정말 마음에 든다.

알렉시도 나 때문에 들떴다. 6년간 사업하면서 또 직원으로 있으면서 깨달은 또 하나의 진리가 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한테 마음을 다하게 된다. 근데 그냥 어설프게가 아니라 진짜 진심을 다해서 알아주는 사람한테 말이다. 낯간지럽게 얘기하자면... 내가 그를 알아주니, 그가 나를 알아준다. 꺄~~~ 미친게지.

여튼 나한테 잘 보일려고 난리났다. 러시아 전통 칵테일을 보여주겠다고 하며 어딘가로 간다. 그리고 나타나서는 생강향 가득한 뭔가를 준다. 이거 좋긴 한데 아직 부족해. 덜 취한거 같애.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좀 많이 취하고 싶긴 하다. 내가 여기를 너무 편히 생각하나. 취해도 집에 가서 잘 수는 있지 싶다. 근데 왜 내가 쳐다보면 다들 피하는거지? 해치지 않아요... 훈남의 시대는 지났구나.


물어보니 이제 한잔 정도 남았단다. 마지막 불태우고 가야겠다. 이 인간들 커피 뽑는 그 한 장면에서도 잘한다는게 느껴진다. 카페를 6년동안 괜히 한게 아니다. 커피를 갈고, 뽑고, 에스프레소 머신 체크하고 에스프레소까지 프로페셔널하다. 물론 커피는 커피가 아닌 술로 연결되서 나가게 된다.


화장실을 갔다오니 언놈들이 내 자리를 차지했다. 내 옆에 러시아 미녀들이 앉아있기 때문이겠지. 미안해 이거 내 자리야. 쫓아낸다. 절대 안돼! 여자들도 아쉬워하는 눈빛이지만 절대 내주지 않으리라. 이것들아! 내가 솔로면 너희도 솔로야! 나 오늘 몇번 채인줄 알아?


9시가 넘어가니 알렉시의 예언대로 엄청 바빠진다. 그래도 진상처럼 움직이지 않으련다. 옆의 러시아 여인은 내가 글쓰면 그건 유심히 보다가 내가 힐끗 쳐다보면 흠짓 놀래며 다른 곳을 본다. 아, 전화번호 안물어본다고. 어차피 한국에서 전화도 못해요. 나 왜 이리 된거지. 나름 날 볼때면 얼굴 붉히던 처자들이 많았었는데. 누가 얘기했더라. 젊음이 너희의 혜택이 아니듯이 시간이 우리의 벌칙도 아니라고.


그럼에도 난 인연을 믿는다. 인연이라는 것은 우연과 다르다. 이 먼 러시아에서 둘이 만났다고 인연이 아니다. 인연은 오히려 필연이다. 인연은 마음이 부딪칠때다. 어디서, 무엇이 중요하넥 아니고 순간이 중요하다. '인'이라는 말을 붙여서 그렇지 '견'연, '묘'연 다 마찬가지다. 연은 계획하지 않았을때 오는거다.


여기 바텐더들을 보면서 느끼는게 스타 같다. 모두 자기만의 특징을 살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다른 바텐더의 작품을 어제 내가 달라고 했을때 그리 싫어했나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알렉스 빠돌이다. 그리고 이 친구도 그걸 아는거 같다.


물어보니 나한테 한 두잔 정도 남았단다. 야 한잔이야 두잔이야. 확실하게 해. 마지막은 멋지게 원샷 딱하고 가고 싶거든. 알렉스도 영어가 짧은데 들어보니 결국 마지막 한잔은 지가 알아서 해주겠다는거 같다. 내가 여행 작가라고 약간의 뻥을 친게 먹힌걸까? 하지만 그래도 이거 보는 사람들, 문샤인의 알렉시는 꼭 보고 가고, 꼭 내 얘기는 해줘라.


취했을때의 말, 취했을때의 행동은 본적 있을지 몰라도 취했을때의 글은 본적 있니? 내가 보여줄꼐. 사실 취한다는거 별거 아니거든. 그냥 보여주는거야. 네가 누군지를. 여행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사랑이 그러하듯이.


나는 나를 정말 사랑한다. 아주 많이. 그래서 힘든거 같다. 뭔 얘기하고 있을까... 이게 취한 글이지. 혹시라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애도를. 그럼에도 맞춤법을 최대한 안틀리는 나에게 경배를.


어렵다 인생은. 특히나 어렵다 사랑은. 시간 지나보면 모두가 알게된다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다. 근데 나 취글(?)은 진짜 처음이다. 왠지 욕 바가지로 먹겠다. 그래도 이렇게 라이브한 글 언제 보겠니. 지금도 키보드를 양쪽에서 신기하게 보고 있구먼. 그래도 이건 내 무기이자 전부이다.

뭐라니. 이제 취했다. 알렉스도 날 취한 취급한다. 그리고 그게 맞지. 근데 취한게 기분 나쁘지 않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마지막 날로 훌륭하다. 다 덤비라고 해! 이건 그냥 하는 소리... 그래도 다음에 여기 올때는 꾸미고 올테야. 이 굴욕... 극복하리라!


취했을때, 외로울때, 슬플때, 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그 글만이 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엄청 취했는데 그럼에도 하고 싶은 얘기는 있다. 그리고 알렉스한테 담보가 하나 있다. 내가 아무리 마셔도 마지막 한잔 만들어주기. 이제 때가 와간다.


마지막 한잔. 나는 강조한다. 야, 이게 러시아에서의 마7지막 술이야. 알렉스가 대답한다. 마지막이란 없단다. 그러게,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면 지는거지.



나오자마자 마셔버린다. 이건 사실 덤으로 준걸 내가 안다. 이 마지막 한잔에 마음이 담겨 있다 느껴진다. 나도 마지막으로 얘기한다. 꼭 돌아올께. 이번에는 여자친구랑 올래~


정신 차려보니 길을 걷고 있다. 3일째 걷는 길이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냥 마음이 편하다. 여행은 편해지는 과정이다.


가다 냥이를 하나 만난다. 그리고 난 절대 냥이를 지나치지 못한다. 쓰다듬으니 얘는 또 온다. 오지마... 애들 생각 나...

정은 주는건 쉽지만 돌려받는건 어렵다. 그게 쉬우면 인생도 싑겠지. 마음을 돌려받는다는게 제발 쉬웠으면 좋겠다.


이제 돌아왔다. 아 어렵다. 여기까지 온것도 어렵고 글도 어렵다. 근데... 아무리 취해도 이 글은 오늘 쓰고 싶다. 글은 나기에 심기고 싶지 않다. 나를 드러내고 싶다. 이거 내일 이블킥이 커보이지만... 그럼에도 필요하다 느껴진다. 그래도 여행음 내일 끝난다. 그건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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