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염색 좀 해야겠다."
여자친구한테 자주 듣는 말이다. 이번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짧아진 내 머리를 보고 그런 얘기를 하였다. 물론 자기가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동안'으로 인정받으려면 염색이 필요하다는 배려가 담긴 걱정이다.
언젠가부터 '동안'이 우리나라에서 화두가 되었다. 나 또한 동안으로 인정받으며 살아왔기에 개인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이렇게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고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구심은 든다. 젊게 사는 건 좋다. 하지만 젊게 사는 거와 젊게 보이는 것은 다르다. 젊게 산다는 것은 자신이 어릴 때 가졌던 그 열정과 순수함, 이러한 것들을 사회의 풍파에도 지지 않으면서 유지한다는 뜻이고, 젊게 보인다는 것은 그저 어리고,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젊게 보인다고 해서 젊게 사는 것도 아니고, 젊게 산다고 젊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나는 젊게 살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감정, 내 육체, 내 정신, 그리고 내 가치관까지,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거며 어떻게 내 소신을 지킬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그리고 사회를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흰머리까지 사랑하려 한다.
사실, 이 흰머리는 나이가 들어서 나온 게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으로, 20대부터 있었다는 그런 구구절절한 변명은 그냥 사족으로 달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