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엽서
퇴근하는데 어머니한테 카톡이 하나 왔다.
'아들아, 집에 왠 엽서 하나가 네 앞으로 와있다.'
'엽서? 나 엽서 받을거 없는데. 누구한테 온건데요?'
'몰라. 왠 영어로... 데...이브? 라고 써 있는거 같은데?'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그때 헤어질 때 집 주소를 줬던가? 메일 주소는 받아왔으면서도 막상 일에, 그리고 삶에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번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엽서를 보내올지는 정말 몰랐다.
사진으로 찍은거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집중해서 읽어보니 데이브가 아닌 같이 다니던 라셸이 보내온 엽서다. 데이브는 나와 헤어진 후에 여행을 마치고 바로 고향인 뉴질랜드로 돌아가지 않고 호주에서 일을 마저 하고 돌아갔단다. 그 둘은 지금 뉴질랜드에 같이 있다며 나보고 언제든 오라고 라셸이 적어놨다.
지하철에서, 엽서도 아닌, 엽서를 찍은 흐릿한 사진 한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잠시 잊고 있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며 나도 모르게 슬쩍 눈물이 한 방울 맺힌다. 단 4일을 만났지만 내 인생의 멘토라고 생각하던 데이브한테 나는 왜 연락을 못하고 있었을까. 그만큼 벌써 일상적인 삶에 적응해버린것일까.
최근에 '인턴'이라는 영화를 봤다. 그 영화를 보면서 데이브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는 삶을 노년기까지 보낸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들만의 '지혜'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지혜는 세대간의 격차로, 서로간의 단절로, 그리고 가끔은 그분들의 아집으로 대부분 우리한테까지 이어지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격차를 그리고 단절을 넘어서서 그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면 정말 뜻하지 않은 값진 우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 35살 연상의 남자를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나는 행운아다.
회사에 들어가고 팀장님한테 내가 초반에 한말이 있다. 익숙하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팀장님을 친구라 생각할 거라며, 업무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부분을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서는 친구라 여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우리 팀장님을 회사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여러가지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또한 그래서 업무적으로도 효율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은 나이나 지위, 배경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벽은 자신의 닫힌 마음과 고정관념, 그리고 사회 시선의 집합체일 뿐이다. 지위가 달라도,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기보다 한두 세대 앞선 친구를 갖는 다는 것은 그들의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기에 더 없이 즐거운 일이다. 실제로 막상 만나보면 오히려 또래 친구들보다 그런 나이차가 많이 나는 친구가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세월의 차이가 오히려 서로 눈치 볼 일들을 적당히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마당에서 조용히 앉아 오랜만에 키보드가 아닌 펜을 들고 편지지를 펼쳐봐야겠다. 그리고 꼭 데이브와 라셸에게 쓰는 편지가 아닌, 여행 다닐 때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쓸 생각이다. 물론 수신처는 뉴질랜드일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