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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Nov 02. 2015

1시간이라는 벽

한계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약 6개월 전 조깅을 시작한 후, 나에게 10키로를 1시간에 뛰는 것은 넘을 수 없는 크나큰  벽처럼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 게 처음에는 3키로도 뛰기 쉽지 않았거니와, 5키로 이상을 뛰고 10키로가 가시권에 들어온 이후에도 내 10키로의 기록은 1시간 30분이 넘었다.


그 10키로의 벽을 이틀 전에 드디어 넘었다. 평소보다 꽤나 무리하여 심하게 지쳤지만, 넘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그 벽을 넘긴 후 나는 굉장한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바로 오늘 그 기록을 다시 1분이나  단축시켰다. 중요한 것은 오늘은 그다지 무리하지도 않고 굉장히 가뿐하게 편한 마음으로 뛰었는데도 시간은 더 단축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틀 만에 내 체력이 급 성장하기라도 한 걸까?


조깅을 하면서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기록 단축은 항상 선형으로 줄어들지 않고 계단식으로 급작스럽게 단축되고는 한다. 절대 넘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벽이지만 한번 넘고 나면 그 벽이 서 있던 선은  또다시 너무도 당연하게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린다.


오늘 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체력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이다. 내 한계를, 내 벽을 내가 스스로 세운 건 아닐까?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는 조금씩 성장하였지만, 속도를 내는 것이 무서워서, 그 속도로는 완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더 빨리 달릴 수 있음에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도 모르게 몸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기에 그 벽을 한 번만 넘고 경험해보면 두려움이 모두 사라져 다시 그 선을 넘는 것은 몸에서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한계는 달리기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거다. 하루하루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는 그 성장한 만큼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충분히 나아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달리기에서 그러하듯 우리가 스스로 정한 한계에, 또는 '나는  안돼'라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커다란 벽을 앞에 세워놓고 그 뒤에 숨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업을 실패하고 정리한 후에, 아버지가 나에게 조용히 하신 얘기가 있다. 6년 전 그 회사를 나온 것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냐는 후회 섞인 말이었다. 걱정이 많은 부모님이기에 당연히 하실 수 있는 이야기이고, 보편적인 사회적인 기준에서 보면 맞을 수도 있는 얘기다. 나름 괜찮은 회사에서, 또 나름  인정받고 다니고 있었기에 그대로 다녔으면 나 또한 나름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름 괜찮은 그 곳을 벗어났기에 나는 내 한계를 한번 벗어날 수 있었고, 그러하기에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달리기에서 그러하듯, 그 무너진 벽이  또다시 새로운 기준이 되어 세상이 정한 모범에서,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름 괜찮은 한계를 벗어났기에, 나에게는 나름을 넘어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믿으며 이에 감사한다.


하지만 기록은 언제나 단축될 수 있듯이, 지금 또 나에게는 나도 인지 못하는 또 하나의 벽이 분명 내 앞에 있을 거다. 이번에 마주칠 그 벽은 어떤 벽일까? 그 벽을 인지하고 넘어서면 내 삶에는 또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벽이 깨졌을 때 나타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달리기에서 체력을 키우듯이 내 스스로를 오늘도 열심히 연마하는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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