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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Jan 05. 2024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비로소 글쓰기에서 해방된 나를 응원해!!

해방이다! 지겨웠던 글쓰기로부터.


"원래 작가를 하려던 거야? 언제부터?"


그저 그런(?) 한량 같은 전업주부인 줄 알았던 내가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백이면 백 다 이렇게 묻곤 한다.

나는 언제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뒤늦게 생각해 본다.


이면지를 엮어 만든 노트에 이야기를 끄적였던?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쫑알대던?

구름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상상하던?

별생각 없이(?) 쓴 글로 상을 받았던?


사실 난 글쓰기보다는 재밌는 이야기를 읽고

상상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 

어쩌다 가수도 되고, 배우도 되고, 사장도 되고, 정신과 의사도 되는 세상.

그렇게 나도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 뿐이다.


어쩌다 작가가 된 일상들은 단 하루도 평범한 날이 없었다.

출근은 있지만 퇴근은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전날 다 세팅해놨던 현장이 촬영 직전 호떡 뒤집듯 바뀌는건 다반사고,

출연자가 잠수를 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방송 중 자막 오타, 내레이션 기각이, 음향 등 실수가 없었는지 모니터 해야 했고,

방송 후, 성적표처럼 받아보는 시청률과 분당 시청 그래프를 시선으로 따라가다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발로(?) 쓴 초고를 여러 번 퇴고할 때면 뭔지 모를 수치심이 느껴지곤 했었다.

모든 직업이 육체와 감정노동이 있듯 글을 쓰는 직업도 그 노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다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사람들이 작가면 우~아하고, 평온하게 일할 거라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말단 공무원처럼 일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다.

프리랜서가 프리~하게 일하면 통장 잔고가 프리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나의 글쓰기 해방을 축하한다며 큰아들이 선물한 꽃>

매일 아침 노트북을 펼치지만, 몇 시간씩 껌뻑이는 커셔를 쳐다보다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노트북을 닫는 날이 많아졌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글 쓰는 일 역시 한 번에 되는 건 아니다.

(시동이 걸려야 하고, 어디쯤 오는 뮤즈도 만나야 하고, 필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 일은 없었는데...

글을 다시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작법서와 글쓰기 관련 가이드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때론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필사해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나름 발악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날은 왠지 글이  술~술~ 써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드디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나 보다!'


하지만, 노트북을 펼치는 순간 물속에서 사르륵 녹는 솜사탕처럼 사라져 글은 써지지 않았다.

글 쓰는 일은 더 이상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닌 '짐'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지겹고, 힘들고, 피곤했다.

업무의 형태가 재택인데, 이제 그만 퇴근을 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 물론 이때까지도 나는 생활을 위한 방송 글쓰기 노동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제, 글을 쓰지 않기로 했어"


가족들에게 글쓰기 해방 선언을 했다.

<그럼 뭘 하려고?>

<이제 와서?>

<엉? 갑자기?>

혹여라도 가족들이 이런 말들을 하면 어쩌지? 라며 눈치 아닌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동안 글 쓰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큰 아이가 꽃다발을 건넸다.  


"이제 당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써 봐"

"그래! 엄마, 엄마가 하고픈 걸 해 봐"


아... 정말 지겹도록 사랑스러운 나의 가족들이다.

권태로운 글쓰기를 멈추고 이제 나는 정말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재밌어하는지 찾아내는 시간들을 가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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