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날 아버지는 무엇이든 읽고, 어디에든 쓰는 사람이었다. 몇 년 전 홀로 지냈던 아버지의 짐들을 정리하며 그 '어디에든 쓴' 아버지의 글들을 발견했다(나는 언젠가 이 글들을 모아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반듯하고 시원시원하고 힘찬 글자가 점점 흐려지고 유연해지고 흔들리는 것을 보며 아버지가 보낸 시간들과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도 세상과도 타협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지만 불행했다.
생각 없던(?) 시절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대물림해 준 것이라곤 지독한 가난과 거기서 파생된 고질적인 우울밖에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건 나의 무지였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아닌 스스로 글을 읽게 된 나는 책을 통해 생각이 넓고 깊어지면서 아버지가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는 '나의 것'을 유산으로 물려준 것을 알게 되었다.
글동무들과 만나 합평하는 시간을 갖는 공간
하루 벌어 삼일을 먹고살아야 했던 건설업 일용직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우리는 가진 것보다 필요한 것이 더 많았다. 그런 궁핍한 살림에서도 아버지가 절대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책과 (서울) 우유였다. 여전히 우유가 영양적으로 부족함 없는 식품이라 확신하는 아버지의 믿음 덕분에 보리차처럼 우유를 양껏 마셨고, 없는 살림 쪼개 납부한 월부금으로 마련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난 아버지처럼 무엇이든 읽고 어디에든 쓰는 사람이 되었다.
동네 책방도 대형서점 못지않게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
김영하 작가는 어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은 약점 투성이의 세계고 실패의 기록이라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혼란스러워하는(조현병이죠) 돈키호테, 초인(超人)사상에 빠져 살인까지 한 가난한 대학생,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결국 자살까지 한 귀족 여인 등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보면 하나 같이 이상하고 특별할 것 없고 찌질(?)한 사람들이다. 이런 소설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에는 아름다운 문체와 뛰어난 심리묘사도 있지만, 소설이 우리와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김영하 작가)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제 누군가를 이기려면 그 사람의 실수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경제도 개인도 성장이 멈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설은 위로하고 있었다. "이미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작가가 철저히 숨겨둔) 지혜나 실패의 가치는 덤이다. 현생이 괴롭고 실패했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혼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건 불안한 나의 세계관을 벗어나 안전한 곳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종종 '내가 살아온 날들을 소설로 쓴다면 몇 권은 나올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말처럼 소설을 쓰는 건 어려웠다. 방송글(입말_구어체) 포맷에 맞춰져 있는 나에겐 특히나.
예전에 교원 취득 목적으로 배웠던 <독서 지도사> 지식 말고는 글쓰기에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사실 글쓰기, 특히 소설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 협업 없이 오롯이 작가 혼자 써야 한다(나는 그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외로운 쓰기를 함께 격려하고 그 글을 기꺼이 함께 읽어줄 동무가 필요했다(선생님, 글동무들도 인정할 정도로 나는 합평문을 정성들여 작성한다 ^ ^) 글은, 좋은 글은, 결국 많은 사람에게 가 닿고 읽혀야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고 꾸준히 읽히기를 바랐다.
큰맘 먹고 인원도 적고 비용 부담도 크지 않은 소규모 합평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소설을 쓰려고 하는 각자의 바람들을 나누고 이론수업에 들었다. 방송 구성 글과 드라마 대본 글만 써보던 내게 소설 작법은 손바닥 앞 뒷면처럼 달라도 너무 달라서 놀랐다. 학교 다닐 때 달달 외웠던 소설의 구조 인물, 사건, 배경은 눈을 씻고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또 한 번 놀랐던 건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과학선생님, 공무원, 대학원생, 전업 주부 등 글동무들의 직업은 다 달랐고, 도무지 글쓰기와는 접점이 없어 보였다. 첫 시간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에 나의 직업을 공개(?)했을 때 모두들 "너무 멋지다~ 나는 글을 못 써서 늘 글 쓰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어요."였는데... 이봐요!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저보다 더 잘 쓰면 어쩌자는 거죠?
55번, 내가 좋아하는 자리 ^ __ ^
오늘도 나는 조사(助詞)를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아직 접하지 않은 새로운 단어들을 찾기 위해 애쓰며 쓰고 있다. 마치 둥지를 짓는 새가 나뭇가지를 물고 여기에 놓다, 저기에 놓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한때 글을 쓰는 시간이 고통으로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쓰는 즐거움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생각해 보니 나를 치유한 건 술기가 뛰어난 의사도 효과 좋은 약도 아닌 결국,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지옥인 지인에게 글쓰기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글쓰기에 최적화된 좋은 플랫폼인 것 같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나의 문체는 깃털처럼 가볍고, 탈고 때마다 작의가 바뀌고 필력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