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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찾는아이 Sep 18. 2021

뭣이 중헌디?

남는 것은 본질이다.

 군대에 있을 때 나의 임무는 사단장 주관 행사나 상훈 실무였다. 군대 특성 상 사회에서 하는 행사와 달리 각이 잡혀져 있고, 더 엄격함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생기는 돌발변수. 정말이지 식은 땀을 흘리게 하던 순간들도 있었으며, 한 순간 찰나에 정신줄 잘못놔서 행사를 망치고 제대로 깨지던 날도 있었다. 이제는 그땐 그랬지 하고 있지만 솔직히 그 행사를 하던 순간에는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행사를 기획하는 가운데에서도 가장 힘겨웠던 것은 이해관계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주변인들, 이른바 뱃사공들의 의견 차이였다. (뱃사공이라 부르는 이유는 속담 '뱃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에서 따왔다.) 군이 계급 서열 사회라고는 하지만, 장교나 부사관들 모두 군에서의 경험 등이 워낙 많으셔서 부서 밖에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면서 '뱃사공' 역할을 자임하신다. 사실 그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내가 보기엔 다 비슷해 보였지만 뱃사공이 이곳 저곳 오다보니 이거 무슨 산으로 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나. 


 이런 결과물이 어땠냐고? 계획은 누더기가 되기 마련이었고, 막상 행사를 하고나서도 행사를 왜 이렇게 했느냐는 수많은 뱃사공들의 의견들이 나온다. 뭐 행사는 잘 해야 본전이라고 하니 한편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착잡했다. 결국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뛰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인 건데.

 

 뱃사공 이야기로 갑자기 포문을 연 이유? 행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이처럼 수많은 뱃사공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사실 눈에 보여지는게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서,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이래라 저래라, 수많은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 우리들을 괴롭힌다. 그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더 경험이 많으니 이렇게 해라,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참 시끌벅적하게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 뱃사공들의 의견들 가운데에서 중요한 걸 짚은 사람들은 사실 손에 꼽는다. 뱃사공들이 이야기해주었던 것은 대부분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이었다. 지휘관 자리가 왜 이렇게 잘 안 보이냐, 병력 배치가 삐뚤어져 있다, 행사 끝나고 사진촬영은 사열대에서 하자... 사실 담당 실무자 역시 다 기획해둔 것들이 있었음에도, 그 행사 당일에 의견들이 쏟아지며 어그러지곤했다. 그리고 정작 중대한 실수를 발견하는 순간은 사실 내가 진행하다가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해도 해도 어려운 것이 행사이다.


 그렇게 허우적 허우적대다가 행사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계기가 있었다. 행사를 망치고, 제대로 깨졌던 그 어느 날. 그 깨졌던 이유 중 하나는 여러 뱃사공들의 의견들에 신경쓰다가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던 계급장 하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말고도 수많은 요소들이 다 어그러졌다. 덕분에 윗분들에게 제대로 깨지고 그날 점심과 저녁을 먹기가 싫었다. 다른 이들의 위로는 들리지 않았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영내 숙소로 돌아와서 그냥 멍하니 있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뛰어 다니고, 연락하면서 행사를 잘 해보고자 했었을까. 결국 이렇게 다 어그러질 운명이었던건데. 모든 요소들이 완벽히 구축되었다 생각해도 막상 현장에서는 '혼돈'의 연속. 그렇게 혼자 생각하다 잠들었다.

 

 그 날 이후. 난 그날 일에 꽂혀서 행사를 할 때에도 쉽사리 자신감이 다시 차오르지 않았다. 하기 싫은 것을 정말 억지로 하듯이 꾸역 꾸역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야근하면서 수여 행사 계획서를 영혼없이 쓰다가 갑자기 다 하기 싫어져서 컴퓨터를 끄고 캔맥주 한잔을 하러 나갔다.

 공원에 앉아서 맥주 한잔을 하면서 심심풀이로 너튜브를 의식의 흐름대로 보았다. 영화나 보러갈까 하다가 검색하면서 보게 된 어느 영상. 거기서 주인공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뭣이 중헌디?'


 그러게. 무엇이 중할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영상의 대사를 중얼거리며 중한게 무엇일까를 생각했다.(사실 난 그 영상만 보고, 이 영화를 보질 않았다.) 내가 덮어두고 나온 기획서에서 무엇이 중했을까를 떠올려보았다. 지휘관을 잘 모시는 것? 디테일한 준비? 생각치 못한 일들에 대한 유연한 대처?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행사를 통해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일까? 그 상을 받은 주인공, 그 계급장을 달은 주인공, 군을 무사히 마치고 떠나는 주인공... 이들이 제일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그 기억 남을 순간 하나를 위해 행사를 여는 것 아닌가? 결국엔 이 행사는 누가 박수를 받아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뱃사공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온갖 것을 다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허우적대었던 나는 갑자기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다 중요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주인공. 다시 말해 본질 아닐까. 결국 그 형식은 곧 사라지기에. 

 

 형식은 사라지고, 본질만 남는다. 본질이 제일 귀하다. 


 갑자기 맥주 한 캔 뚝딱 비웠다. 어서 가서 문서 기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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