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겨울, ROTC 훈련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행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과 긴장감 때문인지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았고, 묵묵히 군장을 메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 고개’라는 이름의 언덕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메고 있는 군장의 무게는 아버지의 어깨보다 가볍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글귀를 바라보는데, 가슴 한켠이 찡해졌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어깨는 제게 가장 넓고, 가장 단단한 곳이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졸린 눈으로 아버지 품에 안겨 있던 기억, 놀이터에서 등을 태워주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이 짧은 찰나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제가 자랄수록, 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더 작아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곧고 넓게 펴져 있던 어깨가 이제는 조금 구부정하고, 마치 무언가 내려앉은 듯한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엔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행군을 마친 뒤 그 의미가 조금 달리 다가왔습니다.
내가 메고 있는 군장은 단지 체력적인 무게일 뿐이지만, 아버지의 어깨는 오랜 세월 가족을 책임지고, 생계를 짊어지며 묵묵히 살아낸 무게였다는 걸. 군장보다 훨씬 무거운 인생의 짐을, 아버지는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걸어오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어깨를 세워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작고 부족한 어깨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며 아버지처럼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무게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삶이 그러했듯이.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우리는 세상을 처음 봤고,
그 위에서 자라났다"
- 헨리 워드 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