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값을 깎아보라는 상무님의 말씀

by 루키트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21년, 상무님과 본부 동기들과 함께 첫 회식을 했던 날이 떠오릅니다. 당시엔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대부분의 식당이 밤 9시면 문을 닫던 시기였죠. 회식 장소는 코스로 요리가 나오는 횟집이었는데, 간단한 밑반찬부터 시작해 회, 매운탕, 알밥까지 순서대로 나오는 구성에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음식은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상무님의 술잔이 비면 따라드리고, 말씀을 시작하시면 젓가락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게 되다 보니 음식은 점점 멀어졌고, 회식이 끝났을 무렵엔 배가 고팠던 기억이 납니다.


식당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상무님께서 저를 보며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음... 루키트가 장교 출신이랬나?” “네! 그렇습니다, 상무님!” “그러면 우리가 못 먹은 요리가 꽤 되지? 장교답게, 사장님께 가서 못 먹은 음식값 한 번 깎아볼까?” "네!(예?)" 갑작스러운 말씀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렸지만, 대답을 드린 이상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식당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저는 머뭇거리며 상황을 설명드리고, 상무님께서 결제할 때, 당연히 전액 결제하시고 못먹은 음식값을 깎아줬다고만 말씀해주실 수 있냐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장님은 놀랍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셨지만, 흔쾌히 알겠다고 답해주셨습니다.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상무님의 말씀은 단순한 농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제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를 보고 싶으셨던 의도도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웠던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나름대로 유연하게 넘어갔던 그때의 경험은, 제게 깊은 배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지 재치 있게 대처하는 것 이상의, 관계에 대한 감각과 태도를 다져주는 시간이었죠.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요청이나 애매한 지시, 경계가 모호한 상황들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정답’보다는 ‘태도’, 정면 승부보다는 ‘유연함’이 더 필요한 순간이 있죠. 그날의 저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무례하지 않게, 또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썼기에, 그 점은 꽤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조금 민망했던 경험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날은 ‘유연함’이라는 단어를 제 삶에 깊이 새긴 날이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먹지 못한 몇 가지 요리보다, 오히려 그날 배운 마음가짐이 지금까지도 제게 더 큰 영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황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태도가 해답이 된다"

- 라이언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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