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얼굴만 아는 정도의 친구 A가 있었습니다.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서로 간에 특별한 감정은 없었기에 딱히 나쁘게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군대를 간 고등학교 친구 B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훈련소에서 우연히 A를 만났다는 이야기였죠. 대화를 나누던 중 B가 제 이름을 꺼냈는데, 그때 A가 한 말이 저에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좀 나대는 이미지? 그냥 뭐 없는데 설치는 애 있잖아. 딱 그래”. B가 제가 고등학교 친구라고 하자 A는 잠시 말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타지에서 생활하며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동기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여겼는데, A의 말 한마디에 제 감정이 무너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몇 달 뒤, A가 휴가를 나와 학교에 놀러왔을 때 우연히 마주쳤을 때, 저는 인사를 하며 물었습니다. “니 근데 왜 뒤에서 씹었는데?”. A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날 이후 우리는 더는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인연이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국에서 모인 두 사람이 훈련소에서 만나고, 거기서 제 이야기가 우연히 오갔다는 것도 그렇고요. 그리고 그 일이 제게 생각보다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어디서든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그것이 곧 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에.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지만, 무너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기에.
그날 이후 저는 가끔 제 말을 되돌아보곤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 혹은 누군가 없을 때 했던 말들이 과연 부끄럽지 않았는지.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내 마음과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그 말이 나를 어떻게 보이게 했는지, 하루의 끝에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며.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그가 거기 있다고 생각하라"
- 토마스 제퍼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