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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 않아도 괜찮았다

by 루키트

약 3년 전, 오른팔이 부러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에 다녔는데,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었고 오른팔에 찬 보조기구는 점점 땀으로 축축해졌습니다. 그 시기에는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마음이 조금씩 불안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당시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 부위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라는 말씀이 머릿속에 남아 있던 날이었죠.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해 뒷문으로 내리려는 순간, 카드를 태그하고 발을 내딛자 갑작스럽게 문이 닫혔습니다. 한쪽 발은 아직 계단 위에 있었고 몸은 앞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넘어질 뻔했지만 본능적으로 왼손으로 정류장 벽을 짚으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고, 손목에 통증이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아픈 손목을 붙잡고 앞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기사님께 따지듯이 말을 해야 하나’, ‘내가 정말 넘어졌으면 어쩔 뻔했지’ 같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앞문에 도착해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기사님, 다음엔 조금만 더 조심해 주세요. 저 진짜 크게 다칠 뻔했어요.” 정색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고 그저 조심스럽게 부탁드리는 마음으로 전했습니다. 기사님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여러 번 사과하셨습니다.


버스를 내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자리에서 버럭 화를 냈다면, 그 감정은 더 오래 남았을 것이고 기사님 역시 온종일 마음이 불편했을지도 모릅니다. 몸이 다치지 않은 것도 물론 다행이지만, 그날 제 감정을 순간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던 일이 더 깊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감정을 다스린 경험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자체로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혹시 요즘 누군가의 실수로 마음이 상한 일이 있으셨을까요? 그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여유가 우리의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


"내면의 평화를 잃지 않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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