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금요일은 할머니 집으로 가는 날

루키트의 일상생활

by 루키트

편의점에 가는 길, 할머니와 전화를 하는데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아이를 보고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루키트가 유치원생 시절. 금요일 저녁에는 "나 할머니 집에 갈래요!"하고 말하고서 집을 나서 할머니 댁으로 갔었습니다. 할머니를 좋아하는 마음도 컸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비디오를 밤늦게까지 볼 수 있었거든요..! (그 당시 과학 만화 비디오, 핑구 등.. 비디오 세대 ㅎ...)


집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비디오 시청이 불가능했기에 매주 금요일 밤을 기다리며, 금요일이 되면 보고 싶었던 비디오를 챙겨 할머니 댁으로 총총 걸어갔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저녁을 챙겨 먹고, 할머니가 보시는 드라마가 끝나면 "할머니! 나 비디오 볼래요!"하고 밤늦게까지 혼자 비디오를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비디오를 안 볼 때는 할머니와 '그림 맞추기 놀이'를 했죠. '그림 맞추기 놀이'는 화투인데, 어렸을 때에는 화투라는 단어가 입에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할머니! 저 라면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할머니께서는 손주 챙겨주신다고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매운 것을 잘 못 먹다 보니 '맹물에 면과 플레이크'만 넣고 끓여주셨습니다. 지금 먹으라고 하면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하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세상 무엇보다 맛있는 라면이었죠.


얼마 전, 설날에 가족과 같이 할머니 댁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께서 베개를 가리키면서 "저 베개 기억 나나?" 하고 물으셨습니다. 전혀 기억이 안 나는 베개인데... 할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유치원을 다닐 때, 그 어렸을 때 사용하던 베개라고 말씀 주시더군요. 손주 기억이 묻어있는 베개다 보니 버리기 아까워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비디오' '화투'를 보면 할머니가 가장 먼저 떠오르듯, 할머니께는 '베개'가 손주의 어린 시절을 간직하는 물건인가 봅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얼굴엔 주름이 많아졌지만, 저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할머니와의 따뜻한 기억이 떠올랐기에, 그리고 멀리서 혼자 사는 손주를 위해 손수 멸치볶음을 해서 보내주신 할머니의 반찬 덕분에 오늘 저녁도 기분 좋게, 그리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들 중,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런 기분 좋고 따뜻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은 우리가 떠나온 곳이 아니라

평생 함께하는 곳이다"

- 에밀리 디킨슨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