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하던 평범한 오후, 차량 종합 검사 알림 톡이 도착했습니다. 시간이 맞을 때 얼른 해두는 게 좋겠다 싶어 근처 정비소에 차를 맡겼죠. 정비를 맡겨두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뜨거운 햇빛 아래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아주 반가운 존재를 마주했습니다. 이름은 ‘수류탄’. 물론 진짜 수류탄은 아니고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가지고 놀던 ‘백자인’ 이야기입니다. 당시엔 그저 특이하게 생긴 열매일 뿐이었어요. 초등학교 담장 근처나 아파트 화단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그런 열매였죠.
작은 뿔이 솟은 그 열매를 보고 저희는 장난삼아 “수류탄이다!” 하며 서로 던지고 깔깔대며 놀았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신기한 장난감이었던 그것의 이름이 ‘백자인’이고, 그걸 품고 있던 나무는 ‘측백나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쉽게 보기 어려웠기에 더욱 반가웠고, 무엇보다 선명히 떠오른 어린 시절의 추억이 참 고마웠습니다. 문득 나무 이름이 궁금해 찾아보다 보니, 그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던 열매의 효능까지 알게 되었죠. 심신 안정, 이뇨 작용, 고혈압 예방, 모발 개선까지. 그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던 백자인에는 꽤 다양한 효능이 있었더라고요.
그렇게 백자인을 들여다보는 동안, 잠깐이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렀습니다. 어릴 적엔 계절 하나하나가 길고 또렷했는데, 지금은 계절도, 추억도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걷다 마주친 백자인 덕분에 잊고 지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고, 조금은 쑥스러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놀잇감이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그 속에서 기억을 꺼내고, 가치를 되새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땐 소중한 줄 모르고 흘려보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알게 되는 것들. 오늘 그 기억을 품고 돌아온 저처럼, 여러분이 문득 마주한 풍경 하나가 따뜻한 기억과 함께 찾아오길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우리는 날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순간을 기억한다"
- 체레사 파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