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시는 할머님을 마주쳤습니다. 강아지는 할머니의 느린 걸음에 맞춰 옆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고, 그 평온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2015년, 제가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옆방에는 연세 지긋한 노부부께서 살고 계셨는데,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면 1층 마당에서 고추를 널고 계신 할머니와 그 옆에서 함께 돕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면 “총각, 학교 가나?” 하고 따뜻하게 받아주시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어느 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고 문을 열자 옆집 할머님이 서 계셨습니다. “총각, 우리 집 보일러가 안 되는데 한 번 봐줄 수 있나?” 하시기에 바로 할머니 댁으로 향했죠. 보일러를 살펴보니 전원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아 작동이 멈춰 있었더군요. 버튼을 눌러 불이 켜지자 금세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잠시 말을 멈추시더니 “고맙다, 총각. 우리 영감 있을 때는 영감이 다 해줬는데, 얼마 전에 먼저 가버려서 해줄 사람이 없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고, 부산에서 홀로 지내시는 외할머니가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았죠.
그렇게 삐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한 시간쯤 지나 다시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자 따끈한 부침개가 담긴 접시를 내밀며 할머니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요거밖에 없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부침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버튼 하나 눌러드린 것뿐이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정성 가득한 보답을 주셨죠. 작은 도움에도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는 따뜻한 손길에 오래도록 울림을 느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삶은 이런 소소한 순간들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소한 행동이 다른 이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날의 부침개를 통해 배웠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이런 마음을 놓치고 지나칠 때가 많지만,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건 서로 주고받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