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조금만 기다려줬다면

by 루키트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본가로 내려가려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짐까지 많아 에스컬레이터 대신 엘리베이터를 선택했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사람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하나둘씩 탑승했고, 저도 그 무리에 섞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멀리서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까스로 문이 닫히기 직전 탑승한 그들. 그런데 그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옆에 엘리베이터도 오는데, 옆에 거 타지.”


그 말을 들은 커플 중 남성이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아씨...” 생각보다 큰 목소리였기에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모두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말을 한 사람의 뒷모습을 매섭게 바라보았고, 원래도 조용했던 공간은 그 한마디로 더욱 차가운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저는 양쪽 모두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작은 생각 하나가 남았습니다.


‘조금만 배려했더라면 어땠을까.’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던 사람도, 뒤늦게 뛰어와 겨우 탑승한 커플도, 아마 모두 중요한 일정이 있었을 겁니다. 누구 하나 잘못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조금만 이해했다면, 그 짧은 순간이 불편함이 아니라 작은 미소로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며 살아갑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혹은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대부분은 다시 볼 일이 없는 낯선 사람들이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도 한마디 말과 작은 행동은 상대방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무겁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배려’라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을 조금 더 잡아준다든지, 서두르는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준다든지, 혹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키는 것. 이런 작은 선택이 모여 서로를 편안하게 만들고,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급한 마음에 누군가를 기다릴 때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제가 그 커플처럼 달려올 때, 누군가 문을 잡아주길 바란다면 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죠.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선택을 합니다. 불편함을 남길지, 아니면 따뜻함을 나눌지. 그 선택이 쌓여 결국 나의 모습이 되고, 우리의 사회를 만들어갈 테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처음이라 부족했지만, 그래서 더 값졌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