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비슷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2월 말 3월 초는 긴장의 계절이다. 성과등급이 매겨지고 상과급이 지급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성과등급은 크게 S, A, B, C 의 4단계로 나뉜다. 회사 전체의 등급별 규모가 정해지게 되면, 그에 따라 다시 실국별로 등급별 인원이 할당된다. 실국별로 배정된 인원은 다시 부서별로 안배된다. 가령, A부서에서 5급이 4명이라면 S 1명, A 2명, B는 1명 식으로 나뉜다.
지난해 했던 일에 대한 우리 과의 성과평가 결과는 국에 소속된 4개 부서 중 최고 수준이지만, 그 자체가 곧바로 직원 개개인의 성과등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과가 매출로 나타나는 회사가 아니며, 제품판매량처럼 개인별 실적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각 부서에 배정되는 성과 등급별 인원은 성과평가 결과뿐만 아니라 설명하기 쉽지 않은 다른 요소들도 고려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우리 과에서도 등급별 인원수가 통보되었다. 등급별 인원에 따라 개인들의 성과 등급을 결정하는 것은 과장의 권한이다. 어렵고 고독한 고민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S 등급을 받지만, 다른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그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누구 하나 게으름 피움 없이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했다는 것을 잘 아는 입장에서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낮은 등급을 받은 직원은 실망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름의 기준을 찾아보지만 어설프다. 팀장들을 불러 모아 내가 정한 안을 설명하고, 이해를 부탁했다. 다시 전체 부서원들을 모으고, '누군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게 될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성과등급 구조의 문제일 뿐'이라며 전혀 설득력 없고 공감가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이튿날, 성과등급이 개인들에게 통보되었다. 피하고 싶었을 등급을 통보받은 직원들을 따로 불러 냈지만,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 어렵다. 그럴싸한 위로나 변명을 해보고 싶었지만 '미안하다.'라는 말밖엔 나오질 않는다.
"내년에는 더 나은 성과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해보지만 약속하고 담보할 수는 없다. 지금 같은 성과등급 체계라면 또 누군가는 피하고 싶은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