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을 선택하고 매력적인 소리를 잃었다
세계 최대최고의 자동차 레이스, F1(Formula 1)에서 배기음을 둘러싼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명사회의 상식으로는 자동차 배기음이라면 시끄러워서 불쾌함을 느끼게 만드는 소리, 말하자면 소음이다. 즉, 적게 들리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그런데 F1에서는 이 소음이 작다는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일의 발단은 2013년이었다. FIA(국제자동차연맹)이 F1 레이스에서 쓰이는 엔진 규정을 2.4ℓ V8에서 1.6ℓ V6 터보로 변경한 것이다. 일종의 다운사이징을 한 것인데,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 번째는 역시 환경문제였다. 지구온난화와 연료 고갈 등으로 친환경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와중에, 자동차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자동차의 친환경성에 대한 까다로운 규정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그 정점에 서 있는 F1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FIA에 따르면 V6 터보 엔진을 쓸 경우 연비 향상 효과는 무려 50%에 달한다. 배출가스도 감소하는 반면 엔진의 파워는 오히려 월등하게 증가한다. 뭐 하나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데, 유일한 걸림돌은 소리다. V6 터보 엔진으로 바뀐 뒤 배기음이 확연히 허약해진 것이다.
F1에서 특유의 배기음은 속도만큼이나 중요한 매력 요소다. 마치 무수한 하이엔드 우퍼로 재생하는 듯한 굉음은 허공을 찢을 것처럼 크고 거칠다. 현장에서는 반드시 귀마개를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까지 레이스나 자동차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그 유니크한 사운드를 한 번이라도 접하고 나면 중독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말하자면 즉흥으로 웅장하게 연주되는 F1의 사운드트랙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하게도 엔진 교체 후 치러진 2014년 시즌부터 빈약해진 배기음에 대해 팬들과 업계의 불만이 폭죽놀이처럼 터지고 있다. 실제로 규정이 바뀌자마자 상당수의 팬이 떨어져나간 사실이 통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회장은 아예 “참혹하다”라고까지 표현했다.
비난 여론이 장기화되면서 F1는 배기음 되찾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배기구에 트럼펫 형태의 메가폰을 설치, 소리를 증폭시킨다는 신박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F1은 엔진에 온보드 마이크를 장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덴마크의 마이크 전문 업체인 DPA 마이크로폰(DPA Microphone)에 개발을 의뢰했다. DPA는 ‘Danish Pro Audio’의 약자로, 독일의 노이만, 숍스와 함께 전 세계 클래식 음악 녹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고품질 마이크로 명성이 높다.
F1는 DPA에 120℃의 극한 온도를 견딜 수 있는 맞춤형 마이크 생산을 요청한 상태다. 현재 F1과 DPA의 이상적인 계획은 100g 미만의 미니 마이크가 배기 출구에서 6인치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엔진음을 최대한 ‘날것으로’ 잡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 개발이 성공한다 해도, 이를 통해 수혜를 입는 것은 현장의 ‘고객’들이 아닌 TV 시청자들이 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F1은 2021년부터 기술적 난이도는 낮추고 사운드는 강조하는 새로운 엔진 규정을 시행한다. 그러나 F1에 막대한 자금을 퍼붓고 있는 자동차 메이커, 페라리와 메르세데스, 르노 등은 이런 변화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특히 70여 년 동안 F1에 참가해온 페라리는 자신들의 입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F1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며 FIA를 압박하고 있다.
언젠가 내연기관이 결국 멸종하게 되는 것은 고정된 미래다. 그리고 전기차 같은 대체에너지 차량이 도로를 점령할 것이다. 몇 년이 걸릴지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날이 오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울처럼 혼잡하기 짝이 없는 대도시 복판도 꽤 고요해질지 모르는 일이다. 시속 300km 안팎으로 달리며 오로지 궁극의 속도싸움을 추구하던 ‘원시적인’ 스포츠 F1도, 어느덧 시대의 흐름 앞에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F1의 배기음 이슈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흥미로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