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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우 Oct 13. 2019

허재에 대한 몇 가지 기억

그는 영리하고 냉정헸디

요즘 허재가 예능에 엄청 나온다고 주위에서 제보가 계속 들어온다.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알려준단다. 그때마다 난 선수 아닌 허재한테 관심이 1도 없다고 대답한다. 내가 원체 예능을 안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들이 하도 링크를 보내주니 하이라이트를 몇 개 봤다. <뭉쳐야 찬다>나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거. 괜히 봤다. 선수 허재만 그리워진다.


어쩌다보니 허재를 사석에서 본 회수가 좀 된다. 스포츠 기자 하고 싶다고 설칠 때는 KCC 감독이었던 그를 숙소 가서 인터뷰도 해봤다. 글쎄, 내가 아는 한은 요즘 예능에서 보이는 캐릭터가 그냥 원래의 캐릭터다. 농구 외에는 거의 백치 수준이고, 의외로 상당한 달변이라는 것 등.(백치인데 말은 잘한다니…?) 나이 드니 젊었을 때의 독기와 껄렁함은 확실히 없어진 것 같긴 하다.


한편으로는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이 한쪽으로만 발달한 인간의 꽤 믿을 만한 전형이라고 할까. 저런 어리버리한 사람이 어떻게 농구할 때는 그렇게 영악을 떨었나 싶다. 상대 입장에서는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데 교활하기까지 했으니 진짜 때려죽이고 싶었을 거다. 사실 그의 압도적인 초절기교, 그리고 너무 뛰어난 신체능력 때문에 이런 영리함이나 다른 매력이 덜 부각됐다는 생각도 든다. 카리스마적인 코트 장악, 정상적인 플레이와 파울 사이의 아슬아슬한 영역을 넘나드는 찰나의 감, 승부처가 되면 집중력의 기어를 순식간에 몇 단계는 올려버리는 출처불명의 괴력 같은 것들. 



게다가 그는 코트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기도 했다. 그가 다혈질이라는 세간의 이미지가 왜 생겼는지 이해는 하는데, 사실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성격이 직선적인 것과 다혈질인 것은 틀림없이 차이가 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거나 상대 선수와 충돌한 게임에서 지는 걸 본 적이 없다. 테크니컬 파울 자체를 의외로 잘 안 받기도 했고.


그의 냉정함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허재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KBL에서 320경기에 출전했는데, 그중 5반칙으로 나간 것은 고작 5경기다. 여기서 세 번은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어서 나가도 될 상황에서 나갔다. 나머지 한 번은 상대의 결정적인 역전 찬스를 파울로 끊어놓고 나갔고, 팀은 이겼다. 결과적으로 그가 순수하게 파울 관리가 안 돼서 나간 건 한 번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때 현장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루키 김승현의 액션에 말려들어서 5반칙을 당하고 어이가 가출해버렸던 그의 표정이 생생하다.(역으로 보면 김승현의 영리함을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고)


허재의 하이라이트 믹스 중에서 아래의 영상을 좋아한다. 점프볼에서 꽤 공들여 만든 50선 하이라이트도 있지만 나는 이게 더 마음에 든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슛-돌파-포스트 무브-어시스트 등 카테고리가 고르게 들어갔다.(내가 만들었다면 엔트리 패스와 스틸을 추가했을 것이다)



사실 99-00시즌이면 그가 전성기에서 내려와도 한참 내려왔을 때다.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발이 질질 끌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지는 게임을 혼자 힘으로 뒤집어엎을 수 있었던 허재는 부러진 손등 부여잡고 뛰었던 전설의 97-98시즌 파이널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내가 그때 우승하고 은퇴했어야 됐는데 말년에 떠서 이 고생이라고(…) 그에게 직접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99-00시즌 영상을 보면, 신체능력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간결해진 그의 플레이는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당시 팀이 액면상으로는 멤버가 나쁘지 않았지만 팀으로서의 완성도는 허접했다. 그만큼 허재가 프리롤을 부여받고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스펙트럼이 넓었다는 뜻이다. 게임 메이커와 게임 체인저 역할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서 맡았다고 할까.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그의 다재다능함과 영리함을 심플하게 볼 수 있었던 시기의, 말하자면 에센스를 모아놓은 괜찮은 영상이다.


아래는 영상에서 특히 좋아하는 장면들.


[00:24]

어렸을 때 허재가 패스를 받는 장면만 모아서 몇 십 번이나 돌려본 적도 있다. 볼을 캐치하는 동시에 몸의 중심으로 잡아채는 리시빙 모션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빠르고 깨끗하다. 얼핏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의외로 프로선수들도 이거 제대로 하는 사람 보기 힘들다. 테크닉이 별 게 아니다. 이런 게 견실하게 하나하나 쌓인 게 높은 레벨의 테크닉이라는 걸, 사람들이 간과하곤 한다.


[02:44]

그의 하이라이트에서 제일 익숙한 것 중 하나가 코스트 투 코스트(Coast-to-Coast)다. 수비 리바운드로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어떻게 저렇게 템포를 교묘하게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롱 리바운드를 잡은 뒤 허재만큼 기민하게 프론트 코트로 돌아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오른손으로 리바운드를 잡아서 오른손만으로 드리블해서 오른손 슛으로 끝내기도 한다.(그는 왼손잡이다!) 단순히 스피드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판단력의 영역이려나. 하여튼 볼 때마다 신기하다.


[03:36, 03:45]

이 두 개의 어시스트에 대해 ‘트리키하다’는 표현 외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허재의 플레이 스타일을 3기로 구분한다. 위에서 말한 99년 이후의 황혼기가 3기에 해당한다. 1기는 중앙대 입학한 1984년부터 서울올림픽에 나갔던 1988년 즈음까지다. 힘과 탄력이 넘치다 못해 주체가 안 되던 시절이다. 올림픽 구 소련전 보면 무려 전성기의(!) 사보니스가 골밑에서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정면으로 달려든다.

다만 이 시절의 플레이는 확실히 상대적으로 선이 굵고 직선적이다. 말했듯이 힘과 깡이 통하던 시절이었고. 어쨌든 유니폼이 근육으로 터질 것 같았던 이 시절을 허재의 실질적인 전성기로 보는 사람도 많다.


1990년대 들어서는 테크닉 면에서 눈에 띄게 세련돼지기 시작했다. 원숙기라고 할까. 슈팅이 더 안정되고 3점슛에 맛들리면서 던지는 빈도도 확연히 늘었다. 1992년 농구대잔치에서는 故 김현준이나 김상식, 문경은 같은 퓨어 슈터들을 아득히 제쳐놓고 3점슛 부문 1위도 했다.(83개를 넣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기억력은 아름답기도 하지.)


문제는 이 시절 소속팀 기아자동차의 라인업이 전 포지션에서 적수가 없었다는 거. 다른 팀의 견제 자체를 허용하지 않을 만큼 강해져버렸다. 허재 입장에서도 자기 할 것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이즈음의 허재는 득점기계로서 아주 탁월했지만, 오히려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매력은 덜했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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