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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20. 2023

변화를 이끌고 싶다면 모범생이 되지 말자

윌리엄 클라인 <DEAR FOLKS> 한미미술관 삼청 전시를 보고

오늘은 미술관으로 출근했다. 꼭 보면 좋겠다고 추천받았던 전시회가 연장을 결정했음에도 이런저런 연유로 가지 못하다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부랴부랴 아침부터 서둘러 삼청동 한미미술관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나는 요즘 수동필름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노출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적절한 조리개, 셔터스피드를 결정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카메라에 대해서는 초보자이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는 장면을 목격하면 어김없이 셔터를 열심히 누르는 사진 꿈나무다. 마음이 움직이는 장면이란 대체로 이렇다. 낡은 문방구 앞에서 오래된 스티커를 구경하는 아이, 문 닫힌 조용한 주말의 재래시장, 깜짝 놀라 후드득 날아가는 참새들, 아직도 운영 중인 동춘서커스장,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 군중들. 그 사진을 현상해서 보면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다. 그리고 그 사진에 없는 것들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걸 상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찍은 사진에 제목을 붙인다. 주로 관찰한 내용에 조금의 상상이 가미된 제목이다. 아직은 그 정도에 그치지만, 조만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그럼 나는 내가 본 장소, 시간, 사람, 공기, 냄새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주가 된다. 


각자가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 다를 것이다.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도 다를 것이고. 윌리엄 클라인도 그랬던 것 같다. 사진은 기록하는 것이라는 기능을 넘어 기하학적인 빛과 무늬, 그것이 주는 회화적 시각적 재미를 추구하기도 했고, 찰나를 기록하는 정적인 사진이지만 그 안에 역동성을 담아내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기도 했다. 흔들리거나 궤적이 남는 다큐사진에서는 사람과 군중의 움직임은 물론 그 너머에 있는 사회 변화와 혼돈도 보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패션사진들인데, 마네킹 같은 모델을 현실 세계의 길거리로 내보내 몽환적이면서도 불일치로 인한 시각의 강렬함을 시도하기도 했고, 그런 모델을 바라보는 지나가는 행인의 눈길이나, 모델이 잡고 있는 큰 거울을 통해 관음스러운 당시 사람들을 풍자하기도 했다. 쇼윈도 안에 있어야할 마네킹 같은 모델들은 밖에 있고, 평범한 남자가 오히려 쇼윈도 안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 특히 눈길을 끌었는데, 인물과 장소의 어울리지 않는 대비가 재미있었고, 쇼윈도에 있기를 거부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아낸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사진에서 역동성을 담아내던 그의 시도는 더욱 진화하였다. 연속된 사진을 한 롤의 일부로 붙여두고 강렬한 빨강 파랑 노랑 등의 물감으로 이 사진을 강조하기도 엑스칠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연속사진과 컬러 장치는 한 장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스토리를 담게 되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그의 실제 영상 작업, 영화 촬영과 이어졌다. 


회화, 설치미술, 사진, 영상이라는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 게다가 당시의 사진작가들은 시도하지 않았던 틀을 깨는 실험 등, 그의 파격적인 시도들은 알고 보니 그가 정식 사진 수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한 사람의 전시라고 하기에는 그 톤이 너무도 다양했고, 그랬기에 시대를 앞서가는 시도들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에게는 정규교육이라는 틀이 없었기에 시장에서 인정받기 어렵고 안전하지는 않았을지언정, 깨야할 틀이 없어서 자유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교육과 학습은 능숙함을 만들지만 창의적이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그러니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남들에게 칭찬받는 모범생이 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받기 힘들지만 마음이 가리키는 새로운 것들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가리키는 것이라... 말이 쉽지 그걸 찾아내고 우직하게 해 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역시 예술은 어렵고 예술가는 더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뻔한 사진이 아닌 사진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든 사진가의 흔적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은, 당장 이번주말 한미미술관으로 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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