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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25. 2023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예술가입니다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 키스 해링 을 보고

예술은 무엇일까? 뒤샹의 샘 (뒤집은 변기) 작품을 처음 본 그날,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저게 미술이라고? 저게 예술이라고? 그럼 예술가가 똥을 싸면 그것도 예술인 거네? 냉소 섞인 충격과 의문에 휩싸인 내가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의문을 가졌던 것은, 그래서 예술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예술이란 심미적인 측면이 강하게 강조된, 그리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기술적인 부분이 중요한, 결과적으로 보는 이에게 어떤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작품을 보았을 때 심미적 경험이 부족하거나, 작품을 만든 이의 높은 기술을 추측하기 어렵다면, 그건 나에게 미술이나 예술이 아니었었다. 그땐 그랬다. 그래서 심미적 체험이 극대화되던 인상주의와 그것에서 시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빈센트반고흐의 작품을 좋아한 것도 그러한 연유였다. 그 외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초현실주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도 무척 좋아했지만, 그 이후의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평일 조용한 미술관에서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날들이 좀 늘어가자, 예술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씩 더 선명해졌다. 단순히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즐겁지 않은 작품들을 보며, '왜 작가는 저런 작품을 만들었지?'라는 생각을 치열하게 했다. 하이디 부어의 살껍데기 같은 작품들, 집의 실내 모습을 그대로 박제하여 벗겨낸 갈색 껍데기가 흡사 미라의 피부 같다는 생각을 하며 본 작품들은 알고 보니 '가부장적인, 여성혐오적인 편견이 팽배했던 남성 의사의 방을 그대로 새기며 벗겨낸 껍데기'였다. 그 방의 껍데기를 온몸으로 뜯고 벗겨내는 하이디 부어의 모습을 영상에서 보면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녀가 그 행위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억압된 여성의 현실을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의지.


그 이후로 예술을 바라보는, 즐기는 나의 시선은 '아름다움'이 아닌 '의미'가 되었다. 화가는 연주가는 작곡가는 작가는 예술가는 왜 하필 저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 작품을 통해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 방향으로 정립된 나의 시선은 그냥 쉬이 지나칠 수도 있는 학생정기연주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냉혹했다. (이전 글 참고 -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 그리고 그 생각이 옳았음을 최근 본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 키스 해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키스해링은 "Art is not a thing; it is a way (예술은 어떤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했고, 그의 작품을 도구삼아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키스해링과 뱅크시는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를 대중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전시장이 아닌 바깥세상으로 나와 행동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의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예술가였다.  그리고 의미를 가진 그 그림들은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티셔츠에 러그에 패턴이나 로고 같은 예쁜 그림으로. 원래 예술의 의미였던 심미적인 측면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대중들 사이에 퍼져나간 패턴과 로고들은 다시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만들고, 의미를 증폭시켰다.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소더비에서 경매되자마자 반쯤 잘려나간 이벤트는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이 예술을 압도하고 넘어선 대표적인 예이다. 그 사건은 아트테크의 열풍과 거품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예술이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되는 씁쓸한 단편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 덕분에 그의 작품이 사랑받고, 그래서 전쟁, 권력, 인권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가 세계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반갑고 환영받을 일이다.


예술은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나'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출발은 '왜 이 것을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반복하고, 결국 나를 비롯한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의미를 전달하고자, 메시지를 전하고자, 보는 이의 마음에 닿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행위는 예술이 된다. 그러니 어떤 의미라도 전달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나나 당신은 예술가가 된다.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예술가이다.



전시회 리뷰를 쓰려다, 결국 일상 단상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전시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사진과 유용한 팁을 공유한다.

*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 키스 해링은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에서 무료로 11월 5일까지 전시한다.

* 소더비 경매에서 화재가 되었던 '풍선과 소녀' 작품을 볼 수 있다.

* 아트스페이스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면 2시간 주차 지원이 된다. 간단히 식사하고 전시를 보면 딱이다.

* 전시는 무료이지만 네이버에서 미리 시간 예약을 해야 한다.

* 간 김에 호텔 로비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도 볼 수 있다.

* 근처 하늘정원은 지금 억새가 가득하다. 탁 트인 들판에서 이착륙 비행기를 구경하거나 사진 찍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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