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졸라의 <돈>을 읽고
주변말을 듣고 덜컥 주식을 샀다가 낭패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코로나가 한창 극성을 부릴 때 함께 핫하게 떠올랐던 바이오주식들을 잘못 샀다가 손절한 후 다시는 바이오주들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고, 기대 속에 IPO를 진행한 회사의 주식을 따상을 기대하고 고점에 샀다가 아직도 물려버린 주식도 있다. 그렇다고 주변 탓을 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안목과 지식을 총동원해서 종목을 발굴하고 신중하게 매수 매도 타이밍을 잡아도 부족할 주식시장을 어설프게 읽은 책 한두 권과 주워들은 지식으로 덜컥 도전했으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었고, 나는 나를 잡았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 투자와 재테크에 대한 공부는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고) 피땀 어린 노동으로 차곡차곡 모아 온 나의 작고 소중한 자산을 부족한 지식과 헛된 욕망, 어설픈 예측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백세시대 아닌가. 노동에만 의존해서는 죽을 때까지 남 도움 없이 자립생존하겠다는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던 중 고전책을 함께 보는 북클럽에서 다음 책으로 선정되어 접하게 된 에밀졸라 <돈>은 타이밍상 기가 막히게 나에게 딱 필요한 책이었다. 이 책을 본다고 해서 투자에 대한 지식이 는다거나 좋은 종목이나 상품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관찰하면서, 돈과 투자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남자친구의 학부시절 교수님 한분은 이 책 독후감을 수업 과제로 내신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발적이지 않은 독서는 역시 마음에 남지 않는가 보다. 읽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 부작용으로 남자친구와 책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웠다. 역시나 좋아서 하는 독서의 순기능을 또 한 번 체감했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 55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기가 눌렸다. 이보다 얇은 월든도 읽는데 이주가 넘게 걸렸는데, 이 책은 도대체 언제 다 읽지 하는 걱정에 오히려 이 책을 눈에는 보이지만 계속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밀어두었다. 밀린 설거지 더미를 보듯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북클럽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카운트다운하면서도 끊임없이 책을 밀어내고, 다른 에세이와 시집, 현대 소설들을 만지작거렸다. 모임 3일 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을 지경이 된 그저께 드디어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은 의외로 너무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힌다는 것이다. 시계가 새벽 2시 반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었지만, 시간이 허락했다면, 다음날 오전 일정이 없었다면, 나는 단숨에 책을 읽어버렸을 것이다. 우선은 흥미진진하다. 주인공 사카르의 욕망과 열정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군데르만은 도대체 언제 사카르를 이기고 승리할 것인가. 실제 돈은 등장하지도 않고 그저 숫자와 글자를 끄적이는 것만으로 한 금융회사가 한 도시가 많은 빈민과 귀족과 부르주아가 들썩이다니, 역시 돈은 허구의 존재야. 저런 사기 같은 행위로 저게 된다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속도감과 온도보다 나는 더 흥분하고 들떠서 책을 다 읽어버렸다. 게다가 이 시대는 내가 한 때 흥미를 가졌던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박람회를 위해 파리는 빈민촌을 밀어버리고 도로와 건물, 상하수도 등 현대화된 도시를 세웠다. 빈민들은 몽마르트 언덕 너머로 쫓겨났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이는 절망을 안고, 많은 이는 부의 꼭대기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까? 그래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 자체에 나는 이미 흥분했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많은 데다가 서양식 이름과 관계, 성격등을 함께 기억하기란 나에게 상당히 까다로워서, 인물과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소설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띄엄띄엄 나눠 읽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맘에 들지는 않지만, 여전히 나약한 인간적인 면이 있지만, 현명하고 지적이고 강한, 위기 이후 다시 봄이 오는, 그래서 외유내강인 카롤린부인이 맘에 들었다. 그녀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욕망 불길 앞에 흔들리거나 사카르의 욕망으로 피폐해지진 않을까 하는 호기심 섞인 걱정이 들어 계속 다음장 그 다음장이 궁금했다.
우리는 황금을 돌같이 봐야 할까? 나는 돈은 무색무취, 아무 잘못도 의미도 취향도 선악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돈을 둘러싼 제도와 구조를 활용한 인간의 명석한 두뇌는 투자와 투기라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며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게 만든다. 그리고 섬기고 숭배하게 한다. 그러나 돈을 원래의 기능 (가치를 표현하는 척도, 물건 교환의 매개, 가치를 축적하는 저장)을 넘어서는 존재로 확대할지 말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돈은 성장과 발전, 평화와 안위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아믈랭의 꿈), 권력과 군림(사카르의 목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니 돈에 너무 관심이 없어도, 너무 관심이 많아도 안 되겠다.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적정한 수준의 자산을 가늠해 보고, 일상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 정도로 돈을 냉정하게 바라봐야겠다. 백 년이 훨씬 넘은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보는 내내 최근 단기급등하고 폭락한 여러 주식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지금도 볼 수 있는 인간군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구나 싶은 책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에게는 실용서적이자 철학책이었다. 나의 삶과 떼려야 뗼 수 없는 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