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란 Oct 15. 2023

그녀의 용기 있는 솔직함에 박수를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을 읽고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움을 직시할 용기, 상대를 온전히 믿는 용기, 상처받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 에세이를 쓰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나의 부족한 문장력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때도, 비문과 틀린 맞춤법을 찾을 때도, 맘에 드는 흐름을 위해 끊임없이 고쳐 쓸 때도, 쓸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아 하얀 화면의 커서와 눈씨름을 할 때도 아니었다. 내 속을 얼마나 더 까발려야 할지, 나와 내 가족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할 수 있을지, 내 상처를 얼마나 상세히 이야기할지, 용기가 부족해서 솔직해질 수 있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나의 부족함을 포장하지 않고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나면 간혹 진이 빠지고 겁이 나면서, 한편으론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을 본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 한 부담스러움으로 이내 나는 다시 부끄러워진다. 나는 아니 에르노처럼 사회적 지위를 가진, 가진 것이 많은, 꽤 알려진 사람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래서 처음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고 신기했다.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은밀한 사생활을 낯낯이 까발릴 수 있는 용기가 인간에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그 놀라움은 이내 존경으로 번졌다. 이어 읽은 <젊은 남자>와 <부끄러움>을 통해 아니에르노가 자신을 현미경 재물대에 올려두고 굳이 드러낼 필요 없을 만큼 어둡고 깊은 곳에 있는 것들까지도 다 꺼내어 분석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아니 에르노의 모습이, 그 선택이 처절했다. <부끄러움>을 출간했을 때, 세상 무엇이 그보다 더 솔직할 수 있을까?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지켜야 할 비밀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녀는 자아가 형성되고 계층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던 어린 시절 기억을 기꺼이 내놓음으로써 이후 이어질 문학활동에서 더 이상의 주저함도 조심스러움도 없었을 것이다. 일종의 배수진을 치고 스스로를 내던졌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고, 프랑스에 살아본 적도 없었기에, 살았던 동네와 사투리, 입은 옷, 좋아하던 노래 등에서 드러내는 시대의 모습과 계급의 차이까지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웠다. 자유롭다고만 생각하던 프랑스도 그 시절 보수적인 종교 생활이 생활을 지배했다는 것이 신기했고, 책을 읽는 내내 오래된 유럽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는 있었지만, 대부분 상상에 의존하다 보니 인류학자처럼 분해한 그녀의 기록을 다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은 컸다. 가령, 작가가 관심 가졌던 한 여자아이, 프랑수아 르누가 살던 곳은 르아브르 거리라는 문장에서는 그게 강남이나 청담 정도 되는 건가?라고 추측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그 시절 프랑스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거나, 주변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계급차이를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대신 그녀의 날카로운 솔직함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속한 세상과 사립학교 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그 세상의 부끄러움. 그걸 쓰고 있을 작가의 어마어마한 용기, 그런 것들을 읽는 내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솔직함은 에세이를 쓰는 나에게 용기가 되었다. 만일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도, 용기 있는 솔직한 독백들을 통해 오히려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용기 내도 된다는 (실제로 용기를 낼 수 없다 하더라도) 기분이 조금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약간의 관음증이랄까, 남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이왕이면 밑바닥까지 밝혀내는 이야기가 많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아니 에르노의 글을 추천한다. 너무 투명하게 다 내놓다 보니 보는 동안 오히려 그런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던 자신에 대해 약간은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가장 부끄러웠던 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괴로울 수도, 위안할 수도, 부끄러울 수도, 괜찮아질 수도 있겠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독자의 선택이다. 다만 부끄러운 나의 무언가가 있다면 아니 에르노를 생각하며 조금 용기를 내기를 바란다. 내가 직시하고 인정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