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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08. 2023

이야기의 힘

천명관의 <고래>를 읽고

너도 읽어봐~ 라며 무심히 툭 던지듯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이 책을 줬다. 읽고 보고 먹고 느낀 모든 것에 나름의 감상을 곁들이는 그녀가 웬일인지 이 책은 뭐라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책을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당놀이의 소리꾼인 듯, 무성영화의 변사인 듯, 이랬던 것이었다 저랬던 것이었다는 문체나, 장면과 인물과 시대를 휙휙 오가는 전개나, 궁금하게 만들지만 상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으면서, 어떨 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극적이게 표현하는 것들이 '이 책은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초반에는 소설 <파친코> 같은 시대와 서사를 담은 소설인가? 했다가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툭툭 튀어나오는 과장 섞인 묘사나 흐름이 전래동화나 설화 같기도 하다가, '그래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칼자국'을 매번 길게 묘사하는 글이나, '그것은 OOO의 법칙이었다'라며 일어난 사건과 현상에 대해 이건 이런 거야라고 단호하게 정리하듯 남발하는 법칙 문장은 처음엔 우습다가도 어느새 익숙해져버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작가의 습관 같은 문체와 흐름들에 익숙해진 나 자신에게 흠칫흠칫 놀라게 된다. 거슬리는 표현과 흐름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소설을 읽게 된다는 뜻이다.


스토리는 매우 흡입력 있게 전개가 된다. 두꺼운 책을 보며, '와 저거 언제 읽지? 잠자기 전에 수면제 대신 봐야겠네.' 하고 잠이 안 오는 밤에 열었는데, 이러다 밤샐 것 같아 1장을 채 다 읽기 전에 두려운 마음에 황급히 책을 덮었다. 다음날 아침 약속만 아니면 아마 침대 머리맡에서 밤새 다 읽어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책의 두께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읽는 내내 여성의 성이 물질화 자본화가 된 시대 상황과 안타까운 에피소드나 움찔할 만큼 몇몇 잔인한 장면이 신경 쓰였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 남성화가 된 금복의 모습에는 그래 잘되었다는 안도감과 통쾌함이 들다가도, 그렇게라도 변해 자기를 채우려던 그리고 보상받으려던 금복의 마음이 왠지 상상이 되어 씁쓸함이 올라왔다. 무지하고 미련하지만 사실 잘못한 것은 전혀 없는 춘희는 그녀의 엄마와 그리고 주변인들의 죄를 그녀의 인생에 걸쳐 속죄하듯 매우 오랫동안 꾸준히 죽을 때까지 붉은 벽돌을 굽는다. 춘희를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그 또한 그녀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싶어 어쩌면 벽돌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다만 이 소설의 환상적인 측면을 고려해 본다면, 죽어서 코끼리와 함께 우주로 날아가 소멸될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이 지나도 수백 년이 지나도 어디선가에서는 붉은 벽돌을 만드는 여왕이 계속해서 벽돌을 만들고 있다는 신화 같은 존재로 남아도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해봤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그러기엔 그녀의 삶이 너무 혹독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몇 가지 와닿는 의미들도 있었다. 가령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라든가 엑스레이 사진을 본 금복이 '그러니까 다 껍데기뿐이란 말이군. 육신이란 게 결국은 이렇게 하얗게 뼈만 남는 거야' 라며 죽음을 생각하는 것들은 내가 만들어가는 삶에 대한 책임과 열정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가도, 갑작스러운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나는 금복이라는 캐릭터에 책을 보는 내내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힘들었던 듯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작가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라는 것에 대한 답을 나는 찾지 못했다. 다만 참 특이하고 불편하지만 재미있고 글이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은 분들이 계시면, 나와 같든 다르든 발견한 생각들이나 감정들이 있다면,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책의 의미는? 발견한 메시지는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요상한 요괴에 홀린 듯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고는 아직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으로 우습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아니 그전에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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