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봐도 좋지만, 알고 보면 더 좋은
마지막 여행지인 세비야는 생각보다 컸고, 볼거리도 많았다. 세비야 대성당만 생각했던 나는 조금 당황할 정도였다. 마침 친구가 찾은 '도시 걷기 여행' 2시간짜리 투어가 있어 빠르게 예약해서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 프로그램 덕분에 이 도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라 가이드 투어를 많이 알아보진 않았지만, 가끔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정제된 정보와 큐레이션은 종종 여행의 질을 더 높이게 마련이다. (물론 기대와 다른 투어는 시간과 돈이 아까워지긴 하지만)
알고 보니 세비야는 헤라클레스가 세우고 율리우스 시저가 살았던 도시였다. ('알고 보니'가 매우 많았다. 그저 옛날 건물과 거리가 예쁘네~ 하고 돌아다니던 우리였기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모르던 정보들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보들은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옛날이야기처럼 신비롭고 매력적이었다.) 그 헤라클레스와 율리우스의 도시라니, 신화와 역사와 함께할 만큼 역시가 깊은 번성한 도시라는 점을 가이드는 강조했다.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NO8DO 마크의 의미도 알 수 있었다. 세비야 혹은 알폰소 10세와 이곳 주민들의 끈끈한 연대를 상징하며, 지금도 세비야 도시의 상징 마크로 쓰이고 있고, 여기저기 포스터나 깃발, 조형물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이어 뱀처럼 구불구불한 쇼핑거리와 현재는 관공서로 사용되고 있는 옛날 감옥을 지나갔고, 시청의 건물 외벽이 한쪽에는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있지만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들었다. 메트로폴 파라솔 (세비야의 버섯)을 거쳐 대성당으로 가는 길, 그리고 유대인이 살았던 지역까지 돌면서 2시간이 넘는 가이드의 열정적인 도시 해설은 끝이 났다. 투어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스페인광장을 꼭 보라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가이드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미처 몰랐던 숨은 정보들을 알게 된 것뿐만이 아니었다. 가이드의 주관적인 해설이 담길 수밖에 없는 투어다 보니, 세비야 토박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취향을 극명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박람회를 위해지었다는 스페인광장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고, 헤라클레스가 세운 역사 깊은 도시라는 점을 자랑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메트로폴 파라솔 (세비야의 버섯)은 극혐 수준이었다. 물론 관광객에게 더 볼거리 즐길거리, 세비야를 다시 와야 할 이유를 주는 건 좋지만, 도시와 어울리지 않고, 주변 가정집과 너무 붙어서 피해를 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를 덧붙였다. 세비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그전에도 들어왔어서, 그녀의 단호한 태도를 보니 왠지 그날의 투어가 더 생생하고 즐거웠다. (글로만 본 이야기를 실제 확인할 때의 흥분 이라고나 할까)
그날 외 만났던 세비야 대성당 가이드도 세비야라는 도시와 대성당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했다. 그냥 일로써 내용을 정리하고 외우고 전달한다기보다는, 거의 선교/전도 수준으로 '세비야의 아름다움과 멋짐을 알려주겠다'는 열정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겨우 두어 명이었지만 게다가 관광 가이드라는 일을 업으로 삼은 특징이 있긴 했지만, 세비야 사람들은 정말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명을 받았다. 내가 만난 다른 가이드들 보다도 일의 전문성과 애정이 가장 극대화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여행 마지막날 시간을 쪼개어 해 질 무렵 스페인 광장을 찾았다. 파란 하늘에 붉어지는 서쪽 태양이 부드러운 그리데이션을 만들고, 탁 트인 듯하면서도 엄마 품처럼 동그랗게 안고 있는 건물과 대지가 편안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 안달루시아 도시를 표현한 타일에 기대어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거나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고, 한쪽에는 플라멩코 공연이 한창이었다. 배의 노를 저으며 시간을 보내는 가족과 데이트족들을 지켜보며 운하의 다리를 건너면 건물을 한눈에 조망할 수도 있었다. 그 건물은 이슬람 문화가 느껴지는 아치형의 기둥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2층과 탑은 고딕 건축 양식이 생각났다. 외벽에 붙은 장식들은 똑같은 게 없었다. 그렇게 100년 전 세비야 사람들은 이곳의 깊고 다양한 문화를 총집합해서 스페인 광장을 만들어냈다. SNS도 없었던 시절이지만 이곳은 맨눈으로 보기에도,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었다. 어딜 찍어도 엽서 같다는 말은 이곳을 위해 나온 말이었다. 왜 그 가이드가 이곳을 가장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다시 세비야를 오게 된다면, 그때도 이곳을 지나치지 않고 꼭 들르리라. 이곳에서 다시 햇살을 즐기는 나른함을 체험하고 거리공연을 즐기고 가족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눈과 필름에 담으리라.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도 미련 한 스푼을 남기며 지는 해와 함께 나의 스페인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