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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Jan 08. 2024

나이 들어 친구가 된다는 것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배우고 존중하는 것

친구와 나는 볕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셨다. 나는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꺼내 글을 쓰고 있었고, 친구는 엊그제 서점에서 산 책을 읽고 있었다. 각자의 나른한 시간이 주변의 소음을 차단한 채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로란, 만일 네가 죽을병에 걸렸어. 근데 30억이라는 큰돈을 써서 치료하고 나을 수는 있어. 너는 그 큰돈을 써서 병을 치료할 거야? 아니면 그냥 죽기를 택할 거야?

갑자기 친구의 입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돈 이야기가 나온 것이 의아했다. 그게 지금 읽는 책과 관련이 있는지, 갑자기 생각난 지인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어젯밤 본 유튜브 같은 데서 나온 주제인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30억을 들여도 병을 치료해야지."

"왜?"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으니까."

"아, 그건 좋네. 그런데 그 30억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 생각하니, 앞으로의 삶이 너무 힘들지 않으려나."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사신과 사투를 벌이실 때,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였다. 그 돈을 씀으로 해서 우리 가족이 나중에 살아갈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할지언정, 지금 우리는 아빠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를, 그리고 하루라도 우리 곁에 더 오래 있기를 선택했었다. 그 선택에 있어서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그 약의 기운으로 며칠을 더 우리 곁에 계셨지만,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그때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날 이후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 한 가지는 그것이었다. '우리가 살아만 있다면 다시 만날 기회가 있잖아.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었고, 힘든 누군가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10년도 더 전이었고 어렸던 나는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보면 그 말을 해주었다. 살아만 있어 달라고. 그게 그 사람에게는 더 힘든 일일지언정. 오랜만에 그때 생각이 났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다시 꺼냈다. 친구는 "그냥 지금 나는 지쳤는지, 그런 일이 있다면 살면서 30억을 버는 것보다는 죽는 걸 선택할 거 같아."라고 말하더니, 뭔가 강렬한 내 눈빛을 읽었는지 "아, 나를 뭔가 설득하려고는 하지 마. 그냥 내가 지금 그런 상태라고. 나는 그냥 그렇게 나를 인지하고 있어."라고 했다. 아직 꺼내지도 않은 설득의 말을 먼저 거절했다. 그때 나는 그래도 살아야지라고 설득하려고 했는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답하려고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친구의 그 말에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여행 마지막날 이것저것 기념품이 될만한 것들을 백화점에서 고르고 있었는데, 살지 말지 고민되는 것을 나에게 물어봤었다.

"이거 어때? 사서 가져가기에는 좀 무겁고, 망설여지네"

"꼭 지금 필요한 게 아니라면 담에 한국에서 사도 되지, 가격은 좀 비싸더라도 직구도 되니깐."이라고 답했다. 그러다 친구가 물건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는 "앗, 내가 그랬다고 안 사거나 그러진 말고, 사고 싶으면 사."라고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친구가 피식 웃으면서 "로란때문에 안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안 사는 걸로 생각하고 결정한 거야."라고 답했다.

그녀를 줏대 없는 사람으로 대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가 자기 결정권이 중요한 사람이었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앞으로 그 부분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사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경우는 늘 약간의 조심스러움이 있다. 그 혹은 그녀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어떤 성장과정이 있었는지, 어떤 이벤트들이 있었는지, 과거 함께 흘러 보낸 시간이 없다 보니,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좀 더 굳어진 머리와 가슴으로 이미 형성된 그들의 세계를 배운다.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어느 정도 취향이 선명해지는데, 그건 가치관과 세계관도 구체적으로 형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숙성된 각자의 생각은 평소의 습관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크고 작은 고민의 결과를 만든다. 그건 그 사람만의 결이 되고 향기가 되고 지금의 모습을 구성한다. 그래서 내 생각이 굳어진 만큼 상대방도 그럴 것이니, 내 결정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결정도 중요할 테니, 함부로 그 세계를 판단할 수도 침범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경계를 무례하게 넘지 않도록 나는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이 조심스러움이 있어,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 않을 예의를 지킬 수 있다. 상대에게 무례하게 내 생각을 주입하지 않을 수 있다. 시쳇말로 꼰대가 되는 것을 늦추거나 방지할 수 있다. 그래서 결이 비슷한 사람들로 내 주변을 구성하게 된다. 첫 매력에 끌리더라도 세계관이 나와 충돌한다면, 나도 그도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을 쉬이 깰 수는 없으니, 결국 생각과 습관과 체취에 동조되는 사람들만 남기게 된다. 체에 거르듯 말이다. 그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남는다는 것은 아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새로운 생각에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흠모하거나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조심스러움이 늘 존재한다. 그건 그 사람의 생각에 좀 더 귀 기울여보거나, 그 사람의 좋은 습관을 닮아보려 노력하거나, 그 사람의 좋은 면을 먼저 보고 응원하려고 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혹여나 나의 눈치 없음이 이 조심스러움을 넘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오늘도 바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녀가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그런 결정을 해야 할 이슈가 생기지 않는 것이 먼저겠지!) 바란다. 아주 작고 쓸모없어 보이는 결정에조차 영향 끼치기를 두려워하지만 (여행 기념품 선택처럼) 그럼에도 나로 인해 좀 더 나은 결정을 하거나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든다. 매일 글을 쓰면서 그런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를 그래서 의미있는 잔잔한 파장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이 아이러니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여전히 여행 중인 친구에게서 기분 좋은 메시지가 왔다. "물놀이는 나이를 먹어도 좋네 ㅎㅎㅎ" 따뜻한 태양과 시원한 바다를 만끽하고 있을 친구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기분이 좋았다. '나도 물놀이 좋아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사이 공통점이 또 있다는 점이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심스럽게 어른의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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