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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Feb 16. 2024

우린 살아가며 몇 번을 더 만날 수 있을까

늘 그렇듯 해가 뜨고 진다. 어제는 겨울 옷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낮기온이 올랐다. 이제 2월부터 봄인가 보다 했더니, 오늘은 오전에 비와 눈이 오고 아직 겨울이야 라고 계절이 이야기하는 듯 추워졌다. SNS에 올라온 옛 직장 동료의 예쁜 딸 사진을 보고 하트를 눌렀더니, 이내 '우리 3월에는 얼굴 봐요'라고 메시지가 왔다. 


20년 지기 인연이 있다. 사회생활 시작하며 알게 된 언니로, 처음에 선배, 대리님, 과장님, 그러다 언니 언니 언니가 되었다. 그 시절 만났던 우리는 매달 몇만 원씩 모으는 계모임을 하기도 했다가, 가끔 생각나면 벙개처럼 낮에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때때로 시간을 내서 저녁에 만나거나 주말에 만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직 나는 여전히 싱글에 자녀가 없지만) 회사 직책이 올라가고 챙겨야 할 것들이 늘면서, 우리는 조금 만남이 뜸해졌다. 달달한 늦잠을 자던 주말 아침 난데없는 언니의 전화를 깜짝 놀라 받았더니 "로란아, 너 골프 쳐라. 나랑 골프치자. 너무 재미있다."라며 나의 주말 아침잠을 확 다 깨버렸던 언니. "우리 딸이 너 좋아하나 보다. 우리 딸은 자기 좋아하는 사람한테 배꼽 보여주거든."이라며 귀엽게 볼록 나온 배를 나에게 자랑하듯 들이밀고 있는 꼬맹이 뒤에서 박장대소하던 언니. "내가 굴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거든, 너 놀러 오면 굴전 해줄게." 라며 정말 맛있는 굴전을 후딱 만들어 술안주로 내주던 언니. 


언니는 이야기하다 신이 나면 길게 뻗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럼 손끝 네일컬러가 언니의 웃음소리와 함께 영글어 반짝였다. 궁금한 게 있거나 부탁할 게 있거나, 아무튼 애교 섞인 이야기를 할 때엔 긴 속눈썹이 도드라질 정도로 눈을 깜빡이면서 상대방을 쳐다봐서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적당한 탄닌에 목 넘김과 향이 좋은 와인을 즐겼고, 굴전에 소주나 맥주도 좋아했다.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보다 간혹 짓는 눈웃음은 참 가지고 싶은 매력포인트였다. 좋은 사람과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곁에 두고 오랜 친구가 되는 진득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내가 발견하질 못했다. 


두 달 전 해가 지나기 전에 얼굴 보자며 만난 언니는 내년(해가 지나 올해가 된 2024년) 목표를 들려줬고,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주는 여전히 옹골진 사람이었다. 그 계획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언니와 참 어울렸고, 언니라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언니는 반짝였고, 우리는 언니의 목표와 계획을 위하여 건배를 했다. "골프는 언제 배우니?"라는 핀잔 섞인 질문에 올해는 꼭 배우겠다는 약속도 했었다. 우리는 아직 많이 젊고 앞으로 함께할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오랫동안 진득이 보자 싶었다.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언니는 아직 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웃고 있는데, 그러나 나는 그런 언니를 이제 볼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연락하면 '그래~로란아.'라며 전화를 받을 것 같은 언니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고 준비 중이다. 그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찍었던 필름 사진에서 언니는 조금 초점이 나가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늘 그렇듯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은 선명했다.


언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이후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서워졌다. 가족들과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잠시 화장실에 가서 문을 닫기라도 하면, 나는 금세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온통 언니 생각에 멍해지고 그러다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자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뭔가를 하게 되지만, 이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먹을 것이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꿀꺽 삼켰더니 그다음부터는 가슴과 명치끝이 아프다. 언니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내 생각은 여기저기 내 몸을 난도질했다. 그래서 빌었다. 신에게, 나무에 깃든 정령에게, 설 차례상 조상님에게, 산신령에게, 닥치는 대로 빌었다. 깨어나게 해 주세요.


기억 속 언니가 환하게 웃는 얼굴이 생각나면 난 곧 울음을 터트린다. 길 한복판에서 지하철에서 방 안에서, 어디든 내가 혼자인 순간.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왜 울고 있을까? 슬픈 걸까, 화가 나는 걸까, 억울한 걸까, 미안한 걸까, 아쉬운 걸까, 불쌍한 걸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정체를 알기 힘들게 뒤섞여버린 감정 속에 난 또 불편하게 그 울음을 끊어내고 일상을 찾고자 부지런해진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언니를 만나러 가는 건데. 아니, 다달이 만나러 가는 건데. 어리석게도 나는 우리 살아갈 날이 영원할 줄 알았구나. 손만 뻗으면 닿을 거라, 맘만 먹으면 볼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구나.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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