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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Feb 18. 2024

고래잡이

파란 고래는 달에 잘 도착했을까

기묘한 꿈을 꾸었네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수족관에서 발버둥을 쳤네

파란 몸뚱이에 하얀 점들이 별처럼 박혀있어

몸을 한번 흔들 때마다 벽에 부딪힌 별들이 떨어져 하얀 사막을 이루었네

흐르지 않는 고래의 눈물은 다시 하얀 점이 되어 온몸에 박혀버렸네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고래를 비추면

사막은 바람이 되어 하얀 점들을 통과해 커다란 고래는 둥실 떠올랐네

까마득히 멀어지는 수족관을 내려다보고

머리 위에 떠있는 보름달을 올려다보고

갈 곳 잃은 고래의 울음은 천지를 울렸네

그 소리에 소름 끼친 나는 잠을 깨어 고래를 올려다보았네


고래는 새끼를 찾아 수족관에 들어와

몸을 비틀고 별들을 털어내며 하얀 사막을 다시 만들었네

고래의 눈물은 다시 몸에 박혀 하얗게 빛이 나고

고래의 로렐라이에 매혹된 이들은 그물을 드리우고 하얀 점들을 뜯어내고 새끼를 사로잡았네


눈을 떠보니 고래는 없었다

하얀 사막과 흩어져 반짝이는 별과 홀로 남겨진 새끼

파란 물감으로 고래를 그려보지만 붓이 닿는 순간 녹아 사라진다 스며든다

달이 뜨면 보이지 않는 고래의 울음소리가 수족관을 채운다


사라진 고래를 찾아라 찾아라 찾아라

찾을 수 없다면 잊으라

사막에 드리운 고래 그림자를 보고 창을 날렸다

그 창은 모래를 뚫고 바람을 가르고 내 머리를 겨냥했다

이제는 잊으라 잊으라

고래를 잡지 못하면, 너를 죽이겠다


고래는 사라졌고

나는 남겨졌다


달이 뜨면 꿈을 꾼다

고래잡이 창은 내 머리를 뚫고 내 눈은 쏟아진 피를 바라본다

시지프스의 돌은 구멍을 메우고 나는 다시 도망친다

다음날이 되면 그 창은 다시 나를 찌르고

흐르는 피는 강이 되고 그 강에 달빛이 내려앉는다

그럼 그 달빛에 파란 고래 그림자가 유유히 지나간다


고래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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